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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바보야, 북한이 아니라 민생이 문제야

입력
2016.1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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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종북ㆍ안보’ 프레임으로 한참 재미를 보려던 참이었는데 예기치 않은(?) ‘박근혜 게이트’로 날벼락을 맞았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출판을 계기로 재개된 새누리당의 종북ㆍ안보 몰이는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향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전 대표를 ‘북한의 종복(從僕)’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비난했고,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검찰은 보수단체의 고발을 접수한 지 하루 만에 사건을 공안부에 배당했다. 종편과 보도 전문채널은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듯 새누리당의 종북ㆍ안보 몰이를 보도하고 나섰다. 민언련에 따르면 6개 종편과 보도 전문채널의 50~79%에 이르는 시사프로그램이 새누리당의 종북ㆍ안보 몰이를 방송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새누리당이 북을 치면, 종편과 보도 전문채널이 춤을 추고, 검찰이 칼을 휘두르는 형국이었다. 만약 종북ㆍ안보 몰이 정국이 지속하였다면 2017년 대선 구도는 2012년 NLL 논란처럼 또다시 “종북세력 대 안보를 지키는 애국 보수세력”으로 갈릴 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최순실로 인해 촉발된 ‘박근혜 게이트’는 새누리당의 종북ㆍ안보 몰이를 순식간에 잠재웠다. 하지만 이 소나기가 지나가면 종북ㆍ안보 몰이는 다시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새누리당에 종북ㆍ안보 몰이는 정권 재창출을 위한 가장 확실한 여론 장악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한 것은 보수의 종북ㆍ안보 몰이를 무력화시킬 대안을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못된 버릇, 이번에 꼭 고쳐놓겠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을 “찌질한 정당”이라고 비난하는 것 이외에 정작 종북ㆍ안보 프레임을 대신할 대항 담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이러한 민주당의 대책 없음은 민주당이 종북ㆍ안보 프레임의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였던 모순된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유신과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 종북ㆍ안보 몰이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진보당 해산과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을 묵인했고, 1963년 대선에서는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을 언급하며 스스로 종북ㆍ안보 몰이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을 해산할 때도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종북ㆍ안보 프레임 속에서 민주당도 보수 양당체제의 기득권을 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과 안보문제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종북ㆍ안보 몰이를 반복하는 보수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보수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 위해서는 종북이 아닌 민생 중심의 안보 담론을 전면화해야 한다. 근대국가에서 가장 확실한 안보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고,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민생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주요국가 중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대학입학조차 부모의 부와 권력에 따라 좌우되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좋은 직장 얻기가 어려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설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주범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불평등에 대해 실효적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정권이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생을 살리는 데 필요하다면 과감히 증세하고, 기업과 시장이 만들지 못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수백만 개의 좋은 공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아! 또다시 ‘박근혜 게이트’라는 바람에 기대어 정권교체를 해볼 요량인가. 아서라. ‘박근혜 게이트’는 최순실 일가의 사적 비리를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고, 해가 바뀌면 보수는 다시 종북ㆍ안보 몰이로 국민에게 최면을 걸 것이다. 지긋지긋한 종북ㆍ안보 몰이에 맞서고 싶다면 유일한 대안은 민생ㆍ안보를 실천하는 것이다. 왜 매번 머뭇거리는가.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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