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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영웅설화 품은 신당(神堂) 김녕 궤네기굴

입력
2017.11.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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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읍 김녕리의 궤네기굴 입구.
구좌읍 김녕리의 궤네기굴 입구.

제주도는 화산동굴의 섬이다. 도내 곳곳에서 발견되는 동굴은 과거 원시인들에게 훌륭한 집이었다. 서귀포 한남리의 ‘바위그늘집자리’ 유적도 그렇거니와, 탐라국의 시작이라 할 삼성신화에서 삼을라와 벽랑국의 세 공주가 처음 신방을 차린 곳도 혼인지의 동굴이었다.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궤네기굴은 수많은 동굴 유적 중에서 그 성격이 달라 눈길을 끈다. 삶의 터전이 아닌 신(神)을 모시는 신앙의 공간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제주의 신당(神堂) 중에 동굴 속에 제단을 차린 곳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궤네기굴의 경우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신앙공간으로 이어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김녕리 삿갓오름(입산봉) 서쪽에 위치한 궤네기굴은 전체 길이가 200m가량 된다. 동굴의 공간 구조는 입구에서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북쪽으로 휘어진 형태를 띠고 있다. 내부의 폭은 가장 넓은 입구가 9.2m, 10m 지점에선 8.4m, 그 안쪽이 7.5m에 이르나 대체로 거의 같은 폭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동굴 바닥 면적은 대략 65㎡정도 된다.

지난 1991년부터 3년간 이곳을 발굴 조사한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궤네기굴은 기원 전후 시기에 사람이 거주하던 유적으로 밝혀졌다. 입구 쪽은 물론 안쪽까지 동굴 전역에 걸쳐 유물이 분포하고 있는데, 대체로 바닥이 굴 안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안쪽의 유물은 입구로부터 유입된 빗물에 의해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벽 쪽에서 출토된 비교적 큰 적갈색토기항아리 파편은 장기 거주에 필요한 저장 용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궤네기굴 내부.
궤네기굴 내부.
수령 380년 팽나무가 지키고 있는 궤네깃당
수령 380년 팽나무가 지키고 있는 궤네깃당

특히 발견된 유물과 동굴 바닥에 퇴적된 토층의 두께를 볼 때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제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기원 전후부터 서기 500년까지 일정 기간 사람이 거주했고, 훗날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주거와 신앙 공간의 성격을 띤 보기 드문 유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의 제의(祭儀)는 60여년 전까지도 성행했다. 제주4ㆍ3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궤네깃한집’이라는 신을 모시던 신당이었다. 당시 1년에 한 번씩 모든 집에서 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 제물로 올린 다음, ‘돗제(豚祭)’가 끝나면 돼지고기로 죽을 쑤어 굿을 보러 온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곳이었다. 하지만 4·3 당시 출입에 어려움을 겪자 단골들이 각 가정에서 돗제를 지냄에 따라 당으로서의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돗제라는 특이한 제의의식뿐만 아니라 당신(堂神)의 내력을 담은 본풀이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 내용을 보면 ‘궤네깃한집’이라 불리는 신은 송당리 당신인 소천국과 백주또의 여섯 째 아들로서 그 용맹함이 눈에 들어 용왕의 막내딸과 결혼하고, 훗날 강남천자국의 난리를 평정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신(神)으로 좌정했다는 이야기다. 용왕국과 강남천자국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스케일의 영웅설화로서 해양문학적 요소까지 갖췄다.

오방색 천을 내거는 제의는 제주의 풍습과 거리가 멀다.
오방색 천을 내거는 제의는 제주의 풍습과 거리가 멀다.
돗제 상차림.
돗제 상차림.

현재는 동굴 내부 천장과 벽면 일부에서 확인되는 용암 종유석과 동굴 산호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동굴 입구의 380년 된 아름드리 팽나무가 그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당의 기능이 사라져 마을의 단골들은 찾지 않지만,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이방인들이 가끔 이곳에서 기도의식을 벌이기도 한다. 간혹 오방색 천을 나뭇가지에 내건 모습도 볼 수도 있는데, 이는 제주의 풍습과는 거리가 멀다. 제주의 신앙민들은 당에 갈 때 지전과 물색이라 불리는 소박한 제물만을 준비하기 때문에 쉽게 비교된다. 주인 떠난 자리에 나그네가 행세하는 형국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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