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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혈육 알아볼 수 있을까...” 이산가족 1.5세대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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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혈육 알아볼 수 있을까...” 이산가족 1.5세대는 한숨

입력
2018.01.29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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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 당시 10세 안팎 나이로

北에 대한 기억 등 점차 흐릿

상봉의 기대감도 높지 않아

1.5세대 이산가족 윤일영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 사무실에서 "상봉에 대해 거의 기대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5세대 이산가족 윤일영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 사무실에서 "상봉에 대해 거의 기대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가족을 만나면 정말 눈물이 쏟아질까.“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이산가족의 뼛속 깊이 사무쳐 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에 태어나 월남 당시 10세 안팎인 이른바 ‘이산가족 1.5세대’들은 상봉이 지연되며 흘려보낸 세월만큼 짧았던 유년시절 속 형제ㆍ자매와 북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 청소년기에 이민한 부모를 따라온 이들을 뜻하는 1.5세대는 새 국가에서 나고 자란 2세대와 달리 양측 문화 사이에 혼란을 겪는 게 일반적이다.

22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만난 윤일영(81) 할아버지는 네 살 위인 넷째 형 돈영(85)씨의 존재를 가슴에 묻은 지 오래다. 광복 이후 북에서 공산주의가 번져 나가면서 당시 지주계급인 할아버지 일가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인 경기 장단군 장도면 오음리에서 하나둘씩 서울로 내려왔다. 1947년 10남매 중 막내인 윤 할아버지(당시 10세)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내려온 뒤 할아버지는 큰형, 어머니와 경기 고양군(현 고양시)에, 돈영씨는 서울 영등포구에 살던 둘째 누나 내외 집에 거처했다. 명절을 제외하면 흩어진 10남매의 소식을 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1950년 9월 28일 한ㆍ미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돈영씨는 돌연 “고향을 보고 싶다”며 어머니에게 통보한 뒤 고향 친구들과 함께 북으로 떠났다. 그게 형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할아버지는 “1ㆍ4 후퇴 때 피난길에 올랐고 고향 사람으로부터 북에 있던 집이 중공군 사령부가 됐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다들 18세이던 형이 군에 끌려가 전사했거나, 인민군에게 죽임당했을 거라고 해 매일 형을 생각하며 우는 어머니를 달래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1.5세대들은 성인이 돼 가족과 헤어진 1세대에 비해 상봉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다. 세월이 흘러 이북에 둔 형제자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너무 어린 시절 헤어져 추억할 기억이 적은 탓이다. 윤 할아버지는 “북한의 기대수명이 짧은 점을 감안하면 여든 안팎이 된 내 또래 이산가족 중 형제ㆍ자매들을 살아서 만날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라며 “형을 기억할 사진이나 물품 중 남은 게 없어 만난다 해도 서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할아버지가 상봉을 신청한 것도 불과 2년 전이다. 생존에 대한 기대치와 상봉 가능성이 워낙 낮아 신청을 꺼렸지만 서울에서 돈영씨를 데리고 있던 둘째 누님(90)이 죽기 전 동생을 보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누님은 같이 생활해 애절함이 있지만, 공유할 추억이 없는 나는 만나도 덤덤할 것만 같았어.”

이제 윤 할아버지에게 남은 희망은 살아서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는 일이다. “로또 당첨처럼 재수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상봉은 남은 이산가족들의 박탈감만 더 크게 한다. 차라리 죽기 전 고향에 성묘 차 방문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소에 술이라도 한잔 올리는 것이 소원이지.” 이어 그는 “머릿속에서 고향 산소 가는 길만은 또렷하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30년 전부터 10월이면 동향 사람들과 고향 땅이 어렴풋이 보이는 경기 연천군 25사단 내 한 고지에서 망향제를 지내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현재 미수복경기도중앙도민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는 이산가족의 날(8월12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1세대들이 다 죽으면 2세대들에게 있어 북한은 완전히 ‘남의 나라’가 될 것 아닌가. 후대에도 이산가족을 기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지.”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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