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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결국 대학이 변해야 한다

입력
2017.12.08 12:4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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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매년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는 건 큰 기쁨이다. 나로선 가르치는 입장에서 갖는 만남이지만 배우고 느끼는 것 또한 적지 않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언제부턴가 장차 리더가 될 만한 재목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뚜렷한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떤 연유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무엇보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선발 자료로서 내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학생들은 장기간에 걸쳐 피 말리는 내신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치열한 내신 경쟁은 가장 가까운 친구마저 밟고 일어서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비움과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빡빡한 일상은 상상력도 극도로 제약한다.

청소년기 내내 잔인한 경쟁에 시달린 탓인지 요즘 대학생들은 멀리 보는 걸 힘들어 하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도 관심이 적다. 오로지 취업을 위한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에만 매몰되어 지내는 경향이 있다. 현행 내신제도가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간 내신은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에 힘입어 꾸준히 강화되었다. 내신이 강화되면 학교 수업의 중요성은 분명 더 커진다. 하지만 내신 강화가 반드시 학교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만일 내신 강화가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지 못한다면 공교육 정상화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교육의 질 제고와 관련하여 내신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는 그것이 입시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내신이 입시의 일부로 남아 있는 한 학생들 개개인의 수요를 반영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게 무척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입시의 생명인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전체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치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유에서 지금과 같은 내신제도가 존치되는 한 학교 시험은 학력고사와 유사한 객관식 시험이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로선 계속 단편적 지식 습득에 매달릴 것이다. 교사로서도 새로운 교육내용이나 교수법을 고민할 유인이 거의 없다. 학생들의 상대적 서열을 매기는 일만 잘 수행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공교육이 정상화된 것으로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현행 내신제도가 유지되는 한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낮아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학교에서 내신을 잘 받도록 하는 데는 학원이 학교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신을 강화해야 하는 핵심적 명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내신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새로운 내신제도는 절대평가의 바탕 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수업과 시험도 획일적 방식을 탈피하여 학생이나 교사의 다양한 특성을 충실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동일한 교과 내용을 학습하고 똑같은 시험을 치르는 해묵은 관행을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대학이 내신을 선발 자료로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내신제도가 안착하려면 대학이 변해야 한다. 특히 유수 대학이 입시업체의 배치표를 의식하던 구태를 벗어 던지고 미래지향적 인재 선발 및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미래 지향적 인재 선발 및 양성의 요체는 숨겨져 있는 원석을 발굴하여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하도록 교육하는 데 있다. 일부 대학이 교사 추천제를 도입하여 내신 등급에 상관없이 심층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본래의 취지를 잘 살려 제도를 운영한다면 상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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