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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함으로... 마포로 만든 캔버스에 마포 그 자체를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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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함으로... 마포로 만든 캔버스에 마포 그 자체를 재현

입력
2018.04.04 15: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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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99-4. 90.9X65.1㎝, 생마포, 유채, 숙대목, 1999년. 박장년 화백의 회고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포 99-4. 90.9X65.1㎝, 생마포, 유채, 숙대목, 1999년. 박장년 화백의 회고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포(삼베)작가’로 불리는 고 박장년(1938~2009) 화백의 회고전 ‘박장년 1963-2009_실재와 환영의 경계에서’전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박 화백은 1970년대 중반부터 2009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40년 가까이 마포를 그렸다. 마포로 만든 캔버스 표면에 동일한 색조의 물감으로 섬세한 음영만을 그려 넣음으로써 바탕 자체에서 마포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 것과 같은 눈속임 효과를 자아냈다.

전남 고흥 태생의 박 화백은 1960년대 홍익대 회화과에서 수학하며 서양 엥포르멜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작품이 다른 앵포르멜 작가들과 달리 “격렬한 제스처 대신 무겁게 침잠하는 심연과 같은 기운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평을 남겼다. 그가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마포’ 시리즈는 극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회화의 캔버스인 마포 그 자체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색채를 절제하면서 대상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기법으로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동료 작가들이 주로 단색 추상화를 제작하던 당시, 단색화 경향을 띠면서도 세밀한 형상 묘사를 도입한 그의 시도는 참신한 것이었다.

박 화백의 장남인 건축가 박윤석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마포를 뒤집어 씌우고 호치키스를 박던 모습을 회고하며 “1974년부터 1년여 사이에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그때 아버지가 수의를 접하면서 마포에 영감을 받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캔버스 표면을 표면 그 자체로 되돌려준다는 박 화백의 철학은 40여 년간 흔들림 없이 지속됐다. 박 화백은 “천은 그림 속에서 말한다, 나는 조형물, 인간에 공헌한 고귀한 조형물. 나는 사람이 만든 것, 나를 버리지 말라. 나를 나이게 하라. 본래의 천으로 영원하게 하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마포 작업을 비롯한 회화와 설치, 영상 90여점이 나왔다. 카이스갤러리와 유가족의 협력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세상의 환대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마감한 작가의 첫 회고전이다. 5월 13일까지 열린다.

한편 성곡미술관은 최근 매각설에 대해 확인 불가 입장을 밝혔다.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은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통해 "아직 아무것도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다"라며 "올해 전시는 모두 예정돼 있다”고만 밝혔다. 성곡미술문화재단에서 고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저택을 개조해 1995년 개관한 성곡미술관은 최근 미국계 투자자에게 매각돼 미술관이 포함된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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