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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평창 롱패딩’ 열풍 속 떠오르는 슬픈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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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평창 롱패딩’ 열풍 속 떠오르는 슬픈 이면

입력
2017.11.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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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1층 평창 팝업스토어 앞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부터 기다린 1,000여명의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1층 평창 팝업스토어 앞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부터 기다린 1,000여명의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평창 롱 패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판매 전날 밤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서서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까지 구입한다고 하니, 가히 열풍이라고 할 만 하다.

평창 롱 패딩의 정식 이름은 ‘구스 롱 다운 점퍼’다. 충전재로 거위털 80%에 솜털 20%를 사용한 긴 패딩 점퍼다. 3만 벌밖에 제작되지 않은 한정판이라는 점과 함께 평창 롱 패딩의 매력으로 꼽히는 것은 ‘가성비’다. 14만9,000원이 그리 싼 가격은 아니지만, ‘등골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수입 브랜드의 패딩점퍼와 비교하면 저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고 덮는 털, 어떻게 만들어졌나

‘다운(down)’은 거위나 오리의 가슴, 목, 겨드랑이 부위의 털을 뜻한다. 겨울용 의류나 이불에 충전재로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2010년 국제동물보호단체 ‘포 파우스(Four Paws)’가 헝가리의 거위농장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다운 생산 과정에서의 동물학대 논란이 시작됐다. 해당 농장은 거위 간, 푸아그라(Foie gras)를 생산하기 위해 거위 목에 관을 꽂고 먹이를 강제 급여해 간을 비대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사육하면서 다운도 생산하는 곳이었다.

▲살아있는 거위의 가슴털을 잡아뜯는 ‘라이브 플러킹’ 영상

다운은 식용이나 산란용 조류가 털갈이를 하거나, 도축된 후 남은 털을 사용하는 축산업의 부산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살아있는 거위의 가슴털을 잡아 뜯는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 방식이 또 다른 동물보호단체의 조사로 드러난 것이다. 식용으로 쓰이는 오리나 거위는 태어난 지 12주에서 16주 후에 도축되는데, 농장의 입장에서는 동물이 살아 있는 채로 몇 년 동안 반복적으로 털을 뽑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다. 털과 함께 피부가 뜯겨져 나가면 마취나 진통제 없이 실과 바늘로 생살을 꿰매는 영상도 공개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의류회사들은 저마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다운을 사용한다’는 기준을 만들고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는데 주력했다.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의류업계의 주도로 ‘책임 다운 기준(Responsible Down Standard · RDS)’이라는 인증마크도 도입됐다. 라이브 플러킹을 하지 않고 윤리적 기준에 의해 생산된 다운을 인증하는 제도다. 노스페이스, 컬럼비아, 밀레, H&M 등의 브랜드가 RDS 인증을 받은 다운을 사용한다고 선언했다.

윤리적 기준에 맞춰 생산... 정말일까?

평창 롱 패딩 라벨에도 "RDS 기준에 적합한 양질의 원료만을 엄선해서 사용하며, ‘라이브 플러킹’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제품인 것을 고려하면 국제사회의 흐름을 인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RDS기준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한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2016년 동물보호단체 페타가 중국 농장에서 거위털 생산 실상을 고발한 영상

미국다운페더연합(American Down and Feather Council)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오리털과 거위털의 80%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중국에는 동물학대를 방지하거나 농장동물의 생산, 이동, 도축 과정에서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동물보호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간 북유럽에 모여 있던 모피농장이 대거 중국으로 이동한 이유도 값싼 인건비와 함께 농장에서 지켜야 할 동물복지 규제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라이브 플러킹을 하지 않는다 해도 동물이 윤리적인 환경에서 사육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인증마크에서 한 발 나아가 QR코드로 소비자가 다운이 생산된 농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도입하는 브랜드까지 생겼다. 그러나 위치를 알더라도 현지의 농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동물을 다루는 지까지 기업이나 소비자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운제품 생산량을 보았을 때 도축되거나 자연적으로 털갈이를 하는 조류의 털로만 수요를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해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RDS 기준을 준수한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거위털 공급자들이 의류업체 모르게 라이브 플러킹을 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증언을 공개해 업체들이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평창 롱 패딩 열풍이 다운패딩 소비 자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인도적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업체도 있는 반면, 최대한 단가를 낮춰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려는 업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복지는 더욱 요원해진다.

인도적 소비 수요, 기업의 윤리적 공급 끌어낸다

최근에는 동물 털을 대신하는 대체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파타고니아, 블랙다이아몬드, 마운틴 이큅먼트(왼쪽부터) 제품들. 각 사 홈페이지 캡처
최근에는 동물 털을 대신하는 대체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파타고니아, 블랙다이아몬드, 마운틴 이큅먼트(왼쪽부터) 제품들. 각 사 홈페이지 캡처

최근에는 동물 털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 소재가 활발히 개발되는 추세다. 이 중 ‘신슐레이트(Thinsulate)‘는 미국 3M사가 개발한 마이크로파이버로, 초극세사 섬유층 사이에 생기는 공기층이 체열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스키의류 브랜드인 ‘로시뇰(Rossinol)’에서 충전재로 사용할 정도로 보온성이 높을 뿐 아니라 동물성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아 이불 충전재로도 인기가 높다. 필자도 몇 년째 신슐레이트 이불을 사용 중인데 따뜻하면서 털도 날리지 않는다. 가볍고 가격이 저렴해 다운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웰론’은 2004년 국내 회사가 개발한 인공충전재다. 버려진 폴리에스터를 재활용한 친환경 합성보온재를 사용하는 아웃도어 업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는 예년보다 겨울이 일찍 찾아왔다. 물론 우리나라 겨울 한파가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거위 가슴털을 빵빵하게 채운 방한복 없이는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춥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 겨울외투를 장만하지 않았다면 올 겨울은 새 다운패딩을 구매하지 않고 한 번 견뎌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조금만 발품을 팔면 인공충전재를 사용했어도 보온성이 좋은 제품을 찾기 어렵지 않다. 또한 내복만 입어도 체온이 3도 가량 상승하고, 실내 난방에 쓰이는 에너지까지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인도적인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기업을 움직이고, 결국 동물에게도 살기에 조금 더 녹록한 세상이 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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