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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치료해 준 푸른 눈 의사 선생님 꼭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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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치료해 준 푸른 눈 의사 선생님 꼭 찾고 싶어요”

입력
2017.09.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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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결핵 앓았던 조군자씨

부산 스웨덴병원서 격리 치료

병원 철수 후에도 의사가 매달 약 보내줘

“배우 록 허드슨 닮아” 기억뿐

내일 병원 사진전서 단서 기대

1957년 부산에 있던 스웨덴 야전병원에서 폐결핵 치료를 받은 조군자 씨. 조군자 씨 제공
1957년 부산에 있던 스웨덴 야전병원에서 폐결핵 치료를 받은 조군자 씨. 조군자 씨 제공

“서전병원(스웨덴병원)의 한 의사가 없었다면 제 인생은 열 다섯 살에 끝났을지도 몰라요. 배우 록 허드슨을 닮았던 그 의사를 늦었지만 찾을 수 있을까요?”

조군자(76)씨는 60년 전 스웨덴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1957년을 생생히 기억한다.

스웨덴병원은 1950년 6ㆍ25전쟁 발발 후 그 해 9월 가장 큰 규모의 의료지원단을 구성해 부산에 연 야전병원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부산에 남아 전쟁 고아와 피란민 등에게 인술을 펼치다 의료 참전국 중 가장 늦은 1957년 3월 철수했다.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간 시절, 조씨는 일명 ‘가난병’으로 불리는 폐결핵으로 1년간 집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그는 “밤만 되면 열이 나고 아팠다”며 “밥과 간장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무렵 조씨의 어머니는 이웃에게 “스웨덴병원이 용하다”며 딸을 데리고 병원이 위치한 국립부산수산대(현 부경대)로 향했다.

1950년 9월부터 1957년 3월까지 부산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펼친 서전병원(스웨덴 야전병원)의 입구 모습. 부산시 제공
1950년 9월부터 1957년 3월까지 부산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펼친 서전병원(스웨덴 야전병원)의 입구 모습. 부산시 제공

병원은 중환자로 가득했다. 조씨는 “병원에 갔더니 배가 터질 것 같이 부푼 환자, 다리를 저는데 고름이 줄줄 흐르는 중환자들이 가득했다”며 “나는 외상은 없었기 때문에 치료를 안 해줄까 봐 많이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 때 30대로 보이는 파란 눈의 의사가 모녀를 지나쳤다. 조씨는 “어머니가 ‘딸을 살려달라’고 울며 불며 매달렸다”며 “그 의사가 통역을 대동해 ‘학생이냐’고 묻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입원을 도왔다”고 말했다.

덕분에 조씨는 두 달간 격리된 입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될 무렵 스웨덴병원이 철수한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조씨는 입원을 도운 의사를 붙잡고 “다시 아프고 싶지 않다”고 사정했다. 그 의사는 “스웨덴에 돌아가서도 1년간 치료약을 보내주겠다”고 안심시켰다.

1950년 9월부터 1957년 3월까지 부산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펼친 서전병원(스웨덴 야전병원)의 내부 모습. 부산시 제공
1950년 9월부터 1957년 3월까지 부산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펼친 서전병원(스웨덴 야전병원)의 내부 모습. 부산시 제공

퇴원 전날 조씨는 그 의사와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은 받지 못했다. 그 의사는 조씨를 직접 집까지 데려다 줬고 조씨는 그에게 서툰 영어로 “잊지 않을게요(I will not forget you)!”라고 말했다. 조씨는 “중학교 영어교과서에서 배운 문장이었지만 그 의사가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후 1년간 매달 초 어김없이 조씨의 집에 치료약이 도착했고, 이듬해 조씨는 완쾌됐다. 43년간 교편을 잡았던 조씨는 2003년 퇴직한 뒤 2006년 스웨덴으로 그 의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름도, 사진 한 장도 없었기에 애초부터 무리였다. 조씨는 “그저 배우 록 허드슨을 닮았던 것만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조씨는 13일부터 동아대 부민캠퍼스 석당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전병원 사진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사진전은 부산시가 스웨덴의 지원과 유엔군 참전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스웨덴 대사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의료원, 부산 남구청 등과 함께 마련했다. 전시회는 30일까지 열린다.

13~30일 부산 동아대 석당미술관에서 열리는 스웨덴 참전용사 사진전 포스터. 부산시 제공
13~30일 부산 동아대 석당미술관에서 열리는 스웨덴 참전용사 사진전 포스터. 부산시 제공

특히 이 기간 스웨덴 의료지원단에 참전했던 의료진과 유가족 등 10명이 사진전을 찾아 관람하는 시간도 갖는다. 사진전에는 스웨덴 의료지원 참전용사 3명이 직접 촬영한 사진자료와 미공개 사진 150여점이 전시돼 당시 의료활동 사진, 피란수도 부산의 풍경 등을 엿볼 수 있다. 조씨는 “혹시라도 전시되는 사진 속에서 마지막으로 파란 눈의 의사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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