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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기자

등록 : 2017.10.12 04:40

“재판하기 무섭네” 판사·증인 향한 협박에 신변보호 요청 급증

등록 : 2017.10.12 04:40

법원 내 폭행ㆍ협박 등 위해 연평균 15건

판사도 귀갓길 무서워 경호 요청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중앙지법 A판사는 올 6월 재판 업무를 마친 뒤 한동안 퇴근을 망설였다. 임차보증금을 둘러싼 조정 사건 피고가 느닷없이 판사실로 찾아와 위협적인 언행을 보이고 간 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졸이던 A판사는 결국 법원에 신변보호 조치를 신청했고, 보안관리대원의 경호를 받으며 귀가했다.

법정 소송을 둘러싼 폭력이나 보복위협은 판사뿐만 아니라 소송상대, 증인, 변호인 등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재판 하기, 재판 받기 무서운 법정 풍경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법원 내 신변보호 요청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3년반 동안 법관과 법원공무원, 당사자, 증인이 법원에 신상ㆍ신변보호를 요청한 건은 모두 488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4년 150건, 2015년 148건, 지난해 124건, 올해 6월까지 66건으로 해마다 100건 이상 접수된다.

특히 전체 신변보호 요청 중 무려 358건(73.3%)이 사건 당사자에 의한 보호요청이다. 증인으로 나선 시민들 중 귀갓길 보호를 요청한 사람도 88명이나 된다. 이처럼 신변보호 요청이 매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법원에 대한 신뢰성을 해치고,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폭력 행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올 4월 대구지법에서는 구속 피고인 곽모씨가 증인으로 참석한 경찰관의 얼굴, 급소 등을 마구 때린 뒤 교도관에게 제압당했다. 재판이 끝나자 “증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증인에게 달려가 이 같은 폭행을 가했던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 내 폭행이나 협박은 2014년 16건, 2015년과 2016년 15건 있었고, 올 상반기에만 7건이나 발생했다.

휘발유와 망치 등 인화물질이나 흉기를 갖고 벌이는 위험한 난동 행위도 심심치 않다. 지난해 3월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건 당사자 B씨가 휘발유를 들고 판사실로 향하다 보안관리대원들에게 붙잡혔다. B씨는 “판사와 면담하고 싶다”며 소란을 피우다 소지품에서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이 발견돼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자 법원 보안요원에게 휘발유를 뿌렸다. 지난해 6월에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냈던 한 고소인이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자 숨겨 가지고 간 망치를 법원 직원에게 휘두르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앞서 2007년 집 앞에서 석궁테러를 당한 재판장 사건, 2015년 로펌 앞에서 소송 상대방이 휘두른 커터칼에 목 부위를 다친 박영수 특별검사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법정 소송을 둘러싼 위협과 보복행위가 줄을 잇고 있으나 법원으로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 증인, 판사가 신변 위협으로 보호를 요청할 경우 경호조치 등을 규정한 ‘신변과 신상정보 보호업무처리를 위한 내규’가 시행되고 있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폭력행사를 미리 방지하기는 역부족이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률과 사법부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고 있다”며 “법원이 법정 지휘권을 단호하게 행사해 소란을 피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감치 명령, 과태료 부과 등 권위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직 의원도 “분쟁 해결 장소인 법정에서 보복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 대책을 강화하고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법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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