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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승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전 ‘고도’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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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승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전 ‘고도’일 뿐이에요

입력
2017.01.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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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을 입은 고도 니시무라.
승복을 입은 고도 니시무라.

“사람마다 고유의 빛깔이 있어요. 제 손과 마음은 그 색을 더 빛나게 하는 도구죠.”

밤새 불경을 들고 있던 손이 아침이면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잡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뉴욕과 도쿄를 누비며 수년간 유명인들의 화장을 맡아온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니시무라 고도(27)씨는 정식으로 계를 받은 승려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화려한 삶과 절제된 승려의 삶이 공존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니시무라씨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치마를 입는 게 왜 추한 걸까?

니시무라가 모델에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고도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omakeup)
니시무라가 모델에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고도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omakeup)

니시무라의 이중생활은 성 정체성 혼란을 극복한 결과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고 있던 8살 때, 그는 꽃꽂이를 배웠다.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은 일상이었다. 만화 속 공주들처럼 치마를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춤추기도 했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그의 성향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10대가 되면서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자 니시무라는 조용하고 수수한 소년으로 변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꾸미면 친구들이 보고 부모님께 이를까 두려워 늘 나를 숨겼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팠던 건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들을 추하게 여기는 현실이었다.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니시무라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 순수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예쁜’ 메이크업이 아닌 ‘나다운’ 메이크업

니시무라는 사람들의 개성을 살리는 메이크업을 지향한다. 고도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omakeup)
니시무라는 사람들의 개성을 살리는 메이크업을 지향한다. 고도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omakeup)

성소수자에 관대한 미국사회에서 니시무라는 점차 자신의 혼란을 극복해나갔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인형 ‘바비’와 남자친구 ‘켄’을 닮은 백인 남녀들, 그들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자신의 노란 피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일부 아시아 여성들이 자신의 피부보다 더 밝은 톤의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는 것처럼, 니시무라 역시 은연중에 흰 피부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미스재팬 출신 모리 리요가 2007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1위를 하는 것을 보며 완전히 깨졌다. 똑같이 쌍꺼풀 없는 눈, 뭉툭한 코를 가진 사람들이 성형외과로 향할 때 모리는 메이크업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아름다움을 뽐냈다. 니시무라는 대학에 입학한 뒤 모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가 견습생이 됐다. 그는 “그의 메이크업 비결을 배워 자신의 단점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부처의 말처럼

니시무라가 2015년 11월 성 소수자들을 위한 메이크업 세미나를 열고 강의를 하고 있다.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inza)
니시무라가 2015년 11월 성 소수자들을 위한 메이크업 세미나를 열고 강의를 하고 있다.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inza)

수많은 고민과 경험 끝에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 니시무라는 2013년 커밍아웃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은 왜 사는가’ ‘왜 선행을 해야 하는가’ 같은 삶의 근원적 질문들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는 결국 2년간의 행자교육을 받고 2015년에 정식 승려가 된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승려들이 의사ㆍ선생님 등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승려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화장을 해주는 건 불교 규율과 맞지 않았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를 붙잡은 건 스승이었다. 그는 니시무라에게 ‘네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승려로 다시 태어난 니시무라는 일본사회의 성 소수자들을 위한 메이크업 세미나를 열고, 트렌스젠더 연예인들을 위한 메이크업 봉사를 하고 있다. 니시무라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렌스젠더들의 피부가 ‘생물학적 여자’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며 “그들의 개성을 살린 메이크업을 통해 그들의 자신감을 높여 줄 때 나 역시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세상은 ‘만화경’이다

니시무라는 지난해부터 트렌스젠더 연예인 슌(Syun)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inza)
니시무라는 지난해부터 트렌스젠더 연예인 슌(Syun)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니시무라 인스타그램(@kodinza)

무지개보다 훨씬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만화경처럼, 세상 모든 개인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니시무라의 생각이다. 차별과 억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런 응원을 보냈다. “당신을 어두운 색으로 낙인 찍는 차별의 언어들을 거부하세요. 누가 뭐라고 비난하든 내 자신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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