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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게임중독 고1 아들... 어떡해야 정신 차릴까요?

입력
2017.10.30 0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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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그래픽=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큰 아들의 게임 중독으로 10년 가까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밤에 잘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샤워를 하면서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아요. 성적은 당연히 바닥이고요. 지금까지 부서져 나간 컴퓨터와 휴대폰만 몇 대인지 모릅니다.

초등학생 때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중학생으로 올라가면서 중독 수준이 됐습니다. 휴대폰으로 게임만 하는 건 아니고 동영상을 계속 봐요. 컴퓨터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해놓고 모니터 아래쪽엔 어김없이 동영상을 켜놓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날을 샐 기세라 밤에는 제 방에 휴대폰을 갖다 놓게 하고 인터넷 공유기를 아예 꺼버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 방에서 장갑이 나와서 보니 밤에 공유기를 몰래 켜고 장갑을 위에 덮어 가렸더라고요. 마우스를 뺏어도 방에서 또 마우스가 발견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도 바닥입니다.

말로 해서 듣는 상황이 아니니 저도 점점 더 강하게 나가게 돼요. 나가 죽으라거나, 살아서 뭐하냐 같은 거친 말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충격을 주고 싶어서요. 남편은 저보다 훨씬 강압적이에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나태한 걸 끔찍이 싫어해서 휴대폰만 보는 아들을 못 견딥니다. 일 때문에 남편이 주말만 집에 오는데 그땐 아들이 아예 집 밖으로 나가 버려요.

회유도 하고 경고도 해봤습니다. ‘우리가 대학까진 너를 책임져줄 수 있지만 대학에 못 가면 한 달치 월세만 줄 테니 그 후엔 알아서 살아라’. 그래도 까딱도 안 해요. 커서 뭘 하고 싶니, 네 목표가 뭐니, 라고 물어도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어요. 대화를 할 때 아들은 기본적으로 대답을 잘 안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면 제가 너무 죄스러워요.

둘째가 큰애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데,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저는 갓난아이 육아에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그땐 왜 그랬는지 아홉 살이면 다 큰 애라고 생각했어요. 동생만 들여다보는 저에게 아들은 “왜 동생만 예뻐해?” 같은 말이나 서운한 기색을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애가 상처를 받았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아들 이름을 거명하면서 “00 어머니, 제가 00이한테 어머니 꼭 모셔 오라고 얘기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아이가 너무 말이 많다고,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엄마들이 다 듣는 데서 그러니 저도 순간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어요.

어리석게도 저는 그 화를 아이한테 풀었습니다. 왜 엄마를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하느냐고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엄마와 못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풀었던 것 같아요. 집에선 늘 “아기 자니까 조용히 해”란 말만 들었으니까요. 그 후로 저는 점점 더 아들 학교에 가는 걸 꺼렸습니다. 두려웠어요. 아들을 망친 엄마란 소리를 들을까 봐. 사실 지금도 속으론 생각해요. 애가 공부를 등한시하고 무기력해져 버린 게 다 저 때문이라고. 그러면서도 뭐든 알아서 잘하는 둘째 아이와 큰 애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잘하면 부모는 자연스레 아이를 믿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아이를 탓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아들은 소위 문제아들처럼 반항적이진 않지만 문제의식도, 고치려는 의지도 없어요. 어느 날은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와서 남편이 화가 잔뜩 났는데, 집에 들어온 아들 손에 부숴진 휴대폰이 있더라고요. 자기가 부쉈대요. 이거라도 안 하면 더 혼날 것 같아서. 그런데 바로 얼마 뒤 저희 몰래 친구한테 휴대폰 공기계를 사서 그걸로 밤새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긴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주말에만 게임하는 것도 제안해봤지만 실패했어요. 기다리면 정신을 차릴까, 얘한테 미래가 있을까,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자식이라 포기도 못하고 속만 태웁니다.

박경선 (가명ㆍ43ㆍ주부)

경선씨, 아들이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가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는 걸 먼저 말씀 드릴게요. 소위 게임 중독이란 ‘이렇게 해보세요’란 말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경선씨 가정의 문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해요. 이 가족 중에서 가장 상처가 큰 사람은 누구일까요. 엄마의 상처가 클까요, 아빠의 상처가 클까요, 아니면 아들의 상처가 클까요. 저는 아이의 상처가 제일 클 것 같아요.

누군가 어떤 행동에 몰두할 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 행위에만 주목해 이걸 중독이란 말로 부르며 계속해서 화두에 올립니다. 마치 밥 안 먹는 아이에게 엄마가 하루 종일 편식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아요.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오늘 밥 잘 먹었어? 뭐 먹었어?’ 다시 밥 때가 되면 ‘안 먹으면 치울 거야, 다시 차려 달라고 하기만 해봐’ 남편이 오면 ‘쟤 오늘 또 안 먹었어, 감기 걸린 것도 밥 안 먹어서 그런 것 같아.’ 모든 대화의 중심이 밥이에요. 게임 중독에 걸린 아이의 가정도 이런 식의 대화를 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경선씨, 이런 대화만 있는 가정에선 부모와 자식 간의 긍정적 소통이 이뤄지기 어려워요. 사람은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치면서 부모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혼내기도 하고 조언도 해줘요. 아이는 부모의 말을 통해 자긍심을 갖기도,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경선씨의 아들은 아마 중고등학교 내내 게임 얘기로 혼났을 거예요. 아버지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없애기 위해 화내고 뺏고 금지하는 데 관계의 대부분을 할애했겠죠. 엄마 역시 통제와 제재, 아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질책과 비난, 그리고 ‘난 네 인생 책임 못 진다’와 같은 협박이 대화의 주였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긍정적 소통은 하나도 없었던 셈이에요.

경선씨 아들이 문제가 있는 건 맞아요. 이건 분명히 나아져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행동 개선을 위해선 부모와의 대화가 필요한데, 그 대화를 가능하게 할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전혀 안돼 있어요.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즐거움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즐거움이란 무슨 대단한 신뢰나 행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시덥잖은 농담에 깔깔댄 기억, 맛있는 것 먹으러 간 기억, 미안하고 고맙고 원망스럽다가도 그래도 역시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 아들에겐 이런 경험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아이가 게임 중독처럼 심각한 화제를 두고 부모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사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들은 아이의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성인이라고 착각해요. 경선씨 아들은 고등학생이지만 아이입니다. 아홉 살 때 아이였던 것처럼 지금도 아이에요. 어렸을 때 ‘동생 깨니 조용히 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 아들은 더욱 부모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아홉 살 난 아이가 동생에게 집중한 엄마에게 서운한 기색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는 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만큼 부모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는 거예요. 차라리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게 더 나아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훨씬 안 좋은 상태입니다. 사람은 부모와의 관계에 신뢰와 믿음이 없을 때 불안정해집니다. 안정을 찾기 위해 무언가 몰두할 거리를 찾아요. 아들은 그게 게임이었을 수도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선씨의 가정은 소통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도 가능해요. 일단 휴대폰과 관련된 대화는 하지 마세요. 지금 게임 중독은 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주제예요. 본인도 그만두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 문제를 매번 화두에 올린다면 아이는 대화에 참여할 수 없어요. 결국 아이가 느끼는 건 무력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다른 대화를 하세요. ‘뭐 필요한 거 없니’라고 한 번 물어보세요. ‘급식은 맛있니? 먹고 싶은 거 있어? 키가 좀 큰 것 같은데 옷은 다 맞아? 셔츠 하나 사줄까?’ 어떤 부모들은 이런 대화를 하라고 하면 ‘제 일도 제대로 못하는 놈한테 무슨 옷이야’라고 반응합니다. 이 생각부터 바꿔야 해요. 아들의 문제는 단기적으로 볼 게 아니에요. 가까운 사람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성인이 돼서 같은 문제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우자 혹은 훗날 낳게 될 자식과도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바꿔야 합니다. 경선씨가 명심해야 할 건, 애초에 신뢰관계를 쌓는 것은 아이의 몫이 아니라 부모의 몫이었다는 거예요. 그건 아이가 할 일이 아니에요. 부모가 즐겁고 재미있고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는 부모와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딸이 알아서 뭐든 잘하는 건 그냥 걔가 훌륭한 애인 거예요. 그건 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아들이 잘 했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사실 경선씨의 마음이 이해돼요. 자식의 문제는 부모에게 마치 파도처럼 자괴감으로 몰려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에 직면하려는 용기가 더욱 필요한 거예요. 자식을 망쳤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감추지 말고 맞닥뜨리세요. 그 뒤엔 부모라서, 부모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벅찬 감동이 있을 거예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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