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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루쿠쿠 팔로마’ 자라섬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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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루쿠쿠 팔로마’ 자라섬을 울리다

입력
2016.10.0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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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음악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가 지난 3일 경기 가평군에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마지막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라틴 음악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가 지난 3일 경기 가평군에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마지막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달빛이 은은하던 한 여름 밤의 정원 파티. 스페인 영화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2002)에서 주인공인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는 한 노장 가수의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흐느끼듯 우는 첼로 소리에 나지막이 읊조리는 사내의 목소리가 애닯다.

브라질 뮤지션인 카에타누 벨로주(74)는 이 영화에서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를 불러 큰 감동을 준다. 세상을 떠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잊지 못해 비둘기가 돼 창가로 왔다는 슬픔 어린 노래다. 생을 초탈한 듯한 관조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그 비둘기가 내 어깨 위에 앉아 우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감동을 넘어 성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인은 벨로주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의 사려 깊은 목소리와 기타 연주에 빠져 공연을 꼭 보고 싶어하는 팬들도 생겼다. 무려 14년 전 일이다.

2016년10월 3일 오후 9시 경기도 가평군에서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쿠쿠루쿠쿠 팔로마~”. 벨로주의 그윽한 목소리엔 ‘이끼’가 끼지 않았다. 첼로 연주 없이 홀로 기타를 치며 부른 그의 무대는 단출했지만, 담백했다. 개천절, 한국의 가을밤을 낭만으로 물들이기에 부족함 없는 여운이었다. 하루 전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싸늘한 가을 밤이었지만, 1만 여 관객들은 끝까지 남아 숨을 죽이며 거장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더러 눈에 띄었다.

벨로주도 낯선 한국 관객의 호응에 놀란 눈치였다. 그는 “한국어를 못해 미안하다”며 공연 내내 “땡큐”를 연발했다. 공연이 끝난 뒤엔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관계자에게 “한국 관객은 다른 나라 관객들과 달리 특별한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고 한다.

벨로주는 첫 내한 무대를 소박하게 꾸렸다. 밴드 없이 무대에 올라 홀로 60여 분을 채웠다. 첫 곡 ‘Um indio’를 시작으로 ‘Menino do Rio, ‘Sampa’ 등 15곡을 불렀다. 붉은색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오른 그는 보사노바의 우아함을 품으면서도, 삼바의 열정보다 차분하게 노래하고, 연주했다.

밴드 포맷으로 진행된 공연이 아니라 그의 다양한 음악을 풍성하게 들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벨로주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부터 재즈까지 아우를 정도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 그는 ‘브라질의 밥 딜런’이라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브라질 독재 정권에 맞서 시적인 가사로 저항의 노래를 발표해 민중가수로 투쟁해왔기 때문이다.

벨로주의 첫 내한 무대는 뜻 깊다. 벨로주는 그간 아시아에서 좀처럼 공연하지 않았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도 5년 전부터 벨로주를 섭외했으나 4년 동안 ‘퇴짜’를 맞았다. 벨로주가 마음을 돌린 건 가수 테레사 크리스티나와의 협연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크리스티나의 음색에 반한 벨로주는 “크리스티나의 아름다운 브라질 음악을 더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에 오랜만에 해외 투어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벨로주의 내한 무대에서 크리스티나는 ‘O mundo e um moinho’ 등 7곡을 혼자 불렀다.

벨로주는 지난달 30일 입국해 한국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공연 전 이틀 동안 서울 경복궁 등을 찾아 개인 일정을 보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벨로주가 이번이 첫 내한이라 공연 전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알고 싶어 했다”며 “서울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본 뒤 무지 분주하지만 영감을 주는 도시인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귀띔했다.

우아한 음악처럼 벨로주가 주최 측에 요청한 것도 유기농 포도주스 하나였다. 그의 무대엔 실제로 유리 잔에 포도주스가 올려져 있었다. 3일 첫 한국 공연을 마친 그는 4일 일본으로 떠났다. 포도주스처럼 달콤하지만, 때론 서늘한 그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지난 3일 경기도에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엔딩 무대에 오른 '라틴 음악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지난 3일 경기도에 열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엔딩 무대에 오른 '라틴 음악의 거장' 카에타누 벨로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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