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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장기 건네고 후유증에 ‘나홀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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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장기 건네고 후유증에 ‘나홀로 고통’

입력
2016.10.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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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생존 기증자 대대적 건강조사

2010~2015년 대상자 전원

직장인 김모(28)씨는 2013년 7월 간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께 자신의 간 우엽 3분의 2를 기증했다. 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빠르게 호전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기뻤지만, 김씨는 간 적출 수술 이후 줄곧 후유증을 겪고 있다. 면역 및 소화기능이 떨어져 전에 없이 감기 같은 잔병치레나 설사가 잦아졌고, 수술 부위의 피부 감각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올 줄 모른다. 수술 직전 부작용 가능성을 안내 받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식으로서 최고의 효도를 했다”고 칭찬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차마 터놓기 힘든 고통이었다.

김씨 부자 간 장기 이식을 승인한 당국(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은 그에게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다. 주치의와의 정기 진료가 유일한 상담 창구였지만, 돌아오는 건 “상황을 지켜보자”는 답변뿐이다. 수술 후 2년이 지났을 때 만성설사 증상을 호소하는 김씨에게 주치의가 처방해준 것은 약이 아닌 유산균이었다. 김씨는 “그 뒤에도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김씨와 같은 생존 장기기증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 나섰다. 국민 보건을 위해 모든 장기 적출 및 이식 행위를 법률로 관리한다는 원칙이 무색하게, 국내 장기 기증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생존 기증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사실상의 첫 조치다.

1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복지부ㆍ한국장기기증원 의뢰로 2010~2015년 간이나 신장을 기증한 이들을 대상으로 ‘생존 시 장기기증자의 기증 후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해당 기간 기증자 1만여명 전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또는 우편 설문조사를 의뢰한 뒤 회수된 답변을 토대로 생존 기증자 지원제도를 모색하는 연구로, 이르면 연말 결과물이 나올 예정이다. 그간 정부 차원의 생존 기증자 실태 조사는 2012년 질병관리본부 의뢰로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간ㆍ신장 기증자 96명을 설문 조사한 게 전부였다.

설문지는 장기 기증 결정 과정, 수술 후 건강 및 생활 변화에 관해 묻는 35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책임연구자인 김명희 연구부장은 “생존 기증은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떼내는 중대한 수술이 뒤따르는 만큼, 기증 동의 과정에서 충분한 안내와 검사가 이뤄지는지, 수술 후 적절한 관리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등에 연구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황의수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생존 장기 기증자의 현황 및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장기 이식은 생존 기증자 의존도가 매우 높다. 장기이식법 제정으로 장기 기증ㆍ이식 과정 전반을 국가가 관리하게 된 2000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생존 기증자는 2만6,675명으로, 같은 기간 뇌사 기증자 3,717명의 7배, 심장사 기증자(안구) 1,648명의 16배가 넘는다. 전체 장기 기증자의 83.3%다. 특히 생존 장기 기증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척을 위해 이뤄진다. 최근 5년(2011~2015) 생존 기증자 9,911명 중 친족에게 장기를 이식한 비율은 96.2%(9,532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생존 장기 기증자, 그 중에서도 친족 대상 기증자는 별다른 법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족에게 최대 540만원이 지급되는 뇌사자 장기 기증과 달리, 생존 장기 기증에 따르는 지원은 입원 기간을 유급 휴가(최대 2주)로 처리해주는 것과 수술 후 1년 간의 정기검진 진료비가 전부다. 그마저도 친족에게 장기를 주는 사람(지정 기증자)은 정기검진 진료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장기이식센터에서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생존 기증자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미국, 기증 과정에서 발생한 수입 손실 등 비용을 보상해주는 영국 등과는 대조적이다.

이렇다 보니 장기 적출 수술에 따르는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은 온전히 기증자 혼자 감당해야 할 짐이 된다. 2012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96명 중 28명(29.2%)이 기증 후 후유증이 있다고 답했고, 이 중 절반(14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답했다. 정선주 수원여대 간호학과 교수는 “생존 기증자 다수가 통증, 위장관 장애, 면역ㆍ체력 저하 등 신체적 이상이나 우울증, 건망증 등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고,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며 “수술 이후 건강 문제로 직장을 잃거나 보험 가입을 거부 당하는 등 사회경제적 곤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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