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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평생에 한글 배우고 나니 광고판 읽는 재미도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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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평생에 한글 배우고 나니 광고판 읽는 재미도 쏠쏠”

입력
2017.10.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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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찾아가는 한글대학’

어르신 1300여명 참여 열공

충남 논산시가 '한글대학'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1일 개최한 '어르신 백일장'에서 참가자들이 글짓기에 앞서 설명을 듣고 있다. 논산시 제공
충남 논산시가 '한글대학'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1일 개최한 '어르신 백일장'에서 참가자들이 글짓기에 앞서 설명을 듣고 있다. 논산시 제공

“이제 은행서 직접 내 이름을 써서 돈도 찾고 버스 행선지도 알 수 있어 좋아유.”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달 25일 충남 논산시 연무읍 동산1리 마을회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20여명이 한글책을 펴 놓고 공부에 열심이다. 방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발도 저리고 허리도 아플 법하지만 누구 하나 힘든 기색 없이 강사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강사 선생님이 화이트 보드에 쓴 글씨를 삐뚤삐뚤 따라 적다가 어디서 한숨이 들리자 한바탕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충남 논산시가 시행하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는 어르신 한글대학’의 한 장면이다. 한글대학은 논산시가 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동고동락’ 프로젝트의 하나로, 현재 15개 읍면동 109개 마을에서 1,300여명의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한글대학 학생 대부분은 70~80대 할머니들이다. 배움의 열망은 넘쳐났지만 아들 교육을 우선시했던 과거 우리 사회 분위기 탓에 배움의 시기를 놓친 분들이다. 최고령 학생은 광석면 천동2리 한글대학에 다니는 101세 이태희 할머니다. 그는 며느리(67)와 함께 다니며 한글을 익히고 있다.

2년 전 한글이 배우고 싶어 딸의 손을 잡고 인근 초등학교 문을 두드렸다 실패한 동산1리 문순임(79) 할머니도 올 3월 마을 회관에서 한글 수업을 한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와 등록했다. 문 할머니는 “글자를 몰라 손주들 보기 부끄럽고 답답했었는데 글을 배울 수 있어 기쁘다”며 “한글이 조금 더 익숙해지면 4년 전 떠난 남편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 미안했던 일을 편지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할머니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넘쳐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농번기 밭일도 제쳐 놓고 마을회관으로 향할 정도라고 시 관계자는 밝혔다. 할머니들은 한글교육 덕분에 이제 거리의 광고판도 하나하나 읽으며 가는 재미가 있고, 마을 시내버스 행선지도 확실하게 구분해 자신 있게 탈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논산시는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의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지난달 1일에는 ‘어르신 한글 백일장’도 열었다. 황명선 논산시장은 “어르신들의 공부 의지와 노력은 곁에서 지켜보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고, 백일장 작품도 수준이 높은 편”이라며 “무엇보다 문해교육은 할머니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한을 풀고 자존감을 높여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허택회 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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