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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앞에서 인생샷? 미국 ‘재난셀카’로 골머리

입력
2017.09.1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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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어마'가 상륙한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서던모스트 포인트에서 관광객들이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유튜브 캡쳐.
허리케인 '어마'가 상륙한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서던모스트 포인트에서 관광객들이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유튜브 캡쳐.

미국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 시의 관광명소인 서던모스트 포인트. 허리케인 ‘어마’가 빠른 속도로 북상하던 지난 9일(현지시간) 이곳의 모습을 찍은 폐쇄회로(CC)TV 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큰 파도가 치고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부는데도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이 촬영됐다. 한 남성은 방파제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파도에 휩쓸려 쓰러지기도 했다. 플로리다 주정부의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지 하루만의 일이다.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가 잇따라 미국 남부를 강타하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즐기듯 ‘재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허리케인을 피해 도망가는 와중에 찍은 셀카를 트위터ㆍ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 #허리케인셀카(#HurricaneSelfie)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고 있다. ‘하비’가 45만명의 이재민과 1,000억달러(112조 4,7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낳았고, ‘어마’가 미 본토에 상륙한지 하루 만에 최소 3명의 사망자와 6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들의 위험한 셀카는 도를 넘은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플로리다 주 정부는 서던모스트 포인트 앞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강한 경고를 내렸다. 릭 스콧 미 플로리다 주지사는 “태풍 속에서 구해줄 사람도, 태풍이 지나간 뒤 수습해 줄 사람도 없다”며 “지금 당장 뒤돌아보지 말고 대피하라”고 당부했다.

재난셀카는 일종의 ‘나르시시즘’

미국에서 재난셀카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미국 하와이 해안에서 발생한 마카니카이 항공의 소형 항공기 추락 사고 때 한 승객이 찍은 셀카 영상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승객 페르디난드 푸엔테스가 추락하는 항공기에서 탈출한 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떠 있는 상황을 개인 카메라로 찍어 공유했다. 그가 찍은 영상에는 사고로 물에 빠진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 그대로 노출됐다.

지난 2014년 미국 하와이해안 인근에서 발생한 마카니카니 항공 추락사고 당시 탈출한 승객 페르디난드 푸엔테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뜬 채 셀카를 찍고 있다. 페이스북 캡쳐.
지난 2014년 미국 하와이해안 인근에서 발생한 마카니카니 항공 추락사고 당시 탈출한 승객 페르디난드 푸엔테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뜬 채 셀카를 찍고 있다. 페이스북 캡쳐.

같은 해 5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때에도 승객들이 사고 직전 산소마스크를 쓰고 찍은 셀카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심지어 조종사도 당시 셀카를 찍었는데 이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조종사가 셀카를 찍기 위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시야를 흐리게 만든 것이 사고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 사고로 조종사를 포함 승객 2명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목숨이 걸린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에서 왜 셀카를 찍는 것일까. 제시 폭스 미 오하이오주립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를 ‘나르시시즘’으로 분석했다. 자신이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에만 초점을 맞추고 긴급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또 다른 유형의 재난셀카도 같은 이유로 보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촬영한 사진은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일부 사람들이 가스폭발로 건물에 불이 붙고 소방차와 경찰차가 진압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을 배경삼아 셀카봉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뉴욕의 한 사진작가가 트위터에 공개한 이 사진으로 촬영자들은 ‘마을의 바보들(Village Idiot)’이라는 별칭과 함께 큰 비난을 받았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나르시시즘 셀카’의 전형으로 꼽힌다.

‘생존신고’ 할 시간에 대피하세요

재난셀카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대 심리학과의 수잔 화이트본 교수는 “생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찍는 ‘서바이벌(생존) 셀카’는 자기보존의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안심시키고, 죽음을 직면한 뒤 자기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기록하는 행위는 모두 본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생존이 최우선이다. 폭스 교수는 위험한 상황에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은 ‘안전불감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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