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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스타트업이 사람을 뽑기 힘든 이유

입력
2017.09.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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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애를 태우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름을 들어본 기업, 이왕이면 더 큰 기업에서 일해야 돈도 많이 벌고 대우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주로 몰린다. 그렇다 보니 취직하기 힘들다는 요즘에도 중소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른다. 하물며 벤처기업이나 창업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스타트업은 기업의 인지도를 떠나서 대기업보다 사람을 뽑기 더 힘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력자를 필요로 한다. 대기업처럼 신입을 뽑아 가르쳐서 키우는 것은 비용과 시간의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문제는 스타트업에서 바로 활용할 만한 능력을 갖춘 경력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채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구직자와 구인자의 눈높이가 어긋난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로 스톡옵션이다. 창업자가 갖고 있는 지분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이다. 대기업처럼 많은 월급을 주지 못하는 대신 미래의 성장가치를 미리 나눠주는 셈이다.

그러려면 스타트업도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스톡옵션을 나눠줄 수 있도록 시장이 받쳐줘야 한다. 여기에 맞춰 스타트업은 사업 초기에 적은 비용을 들이는 대신 눈높이를 낮춰 경쟁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을 뽑아 회사 규모를 키워야 한다. 나중에 회사가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면 몸값 비싼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스톡옵션을 받는 게 좋을 것이란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이런 스텝업 전략을 갖추려면 구직자와 구인자가 서로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그런데 구직자들은 지금 보수를 덜 받더라도 스톡옵션을 받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스타트업의 역할 모델(롤 모델)이 이 땅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나 애플의 창업주였던 고 스티브 잡스처럼 창고에서 힘들게 시작한 사업이 크게 성공해 나중에 주식으로 부자가 됐다는 꿈을 심어줄 롤 모델이 없다. 1990년대 말 불었던 닷컴 열풍 당시 시작한 이 땅의 벤처기업들 가운데 성공한 기업들은 이제 벤처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초창기 창업자들과 함께 고생한 사람들은 스톡옵션을 받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톡옵션을 조건으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스톡옵션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 힘들다. 더욱이 미래의 성장가치를 담보하기 힘든 스타트업을 바라보며 게이츠나 잡스처럼 스톡옵션 대박을 꿈꾸기란 아주 힘들다.

따라서 구직자들이 스톡옵션을 기대할 수 있는 성공한 스타트업 롤 모델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큰 기업들이 더 많은 스타트업들의 등장을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청년 창업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과 더 많은 사업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보다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더 이상 육성에 초점을 맞춘 퍼주기식 지원으로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힘들고 취업자도 몰리지 않는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하듯, 이제는 투자보다 스타트업을 위한 시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시장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스타트업들이 규모를 키우고 성장가치를 담보해 스톡옵션을 주며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잡스 같은 인재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사업을 하는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생각난다. 지인의 사업체가 산학협력 기업으로 선정됐다는 글에 ‘미래의 잡스를 키워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에 지인이 올린 답글을 보고 백번 공감했다. “잡스는 타고나는 겁니다. 키우는 것보다 발굴이 더 맞을 겁니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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