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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살림살이의 지루함

입력
2016.10.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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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엄마의 출산 휴가가 끝이 났다. 이제 낮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책을 읽어 주거나, 잠시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자는 동안은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기 전 널었던 빨래를 가져와 개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고 요리를 한다.

글로 쓰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매끄럽지 않다.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머그컵이 집안 곳곳에 있다. 다시 설거지한다. 뒤늦게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간식통을 발견하면 다시 설거지한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설거지가 끝난다. 세탁실도 하루 평균 10번은 넘게 드나들어야 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녀온 후 벗어둔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욕실 수건에 냄새가 나서 세탁실로 다시 갔다. 백일이 지난 아이가 입은 옷은 따로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다시 간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지루한 반복이었을까.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컵 없어?” “빨아야 할 것 없어?”라고 물었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 엄마처럼 설거지하기 전에 먼저 각 방과 거실을 살피고 빈 그릇과 컵을 먼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다면 이렇게 몇 차례나 설거지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랫감도 미리 챙겨 둔다면 몇 번만 세탁실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그런 요령이 없었던 것인데, 요령이 없기 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컵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방마다 들어가 빈 컵을 챙겨올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집안 살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했던 것이다. 살림하기 전에는 살림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디테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처럼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나갔고, 끓여둔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모두 상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같이 성을 냈다. ‘신경 좀 써 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다 얼마 전에 한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기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러면 집안 살림에는 얼마나 동참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육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살림에 동참하고 있고, 설거지나 청소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안 살림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림은 노동인 반면에 살림을 빼고 아이와 놀기만 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근에나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조지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잘하는 살림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르고 만들고 나누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오직 지루한 살림살이뿐이라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은 설거지하기 전에 집안부터 둘러봐야지. 내 빨래를 넣기 전에 아이 빨랫감은 없는지도 봐야겠다. 시장에 가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것은 없어?”.

권영민 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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