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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기름 얻으려다 목숨 잃어 “지독한 가난이 부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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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기름 얻으려다 목숨 잃어 “지독한 가난이 부른 참사”

입력
2017.06.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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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ㆍ물통ㆍ콜라병까지 들고

기름 담는 중에 유조차 화재 폭발

주민들 하루 2달러로 생계 유지

휘발유 1갤런 가격만도 못해

과속했던 유조차 운전수도 가난

운행 한번이라도 더 하려다 사고

2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 바하왈푸르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유조차가 전복된 후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153명이며 부상자도 160명을 넘어섰다. 전복된 유조차는 휘발유 2만5,000ℓ를 싣고 남부 카라치에서 파키스탄 제2 도시 라호르로 향하는 도중 과속으로 전복된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규모가 이처럼 큰 이유는 전복된 유조차에서 흘러나온 휘발유를 공짜로 얻으려는 주민들이 모여들어서다. 비교적 경상을 입은 부상자 압둘라(43)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휘발유를 담으려고 양동이부터 물통, 심지어는 콜라병까지 들고 나왔다”라며 “불이 날 수 있었지만 아무도 위험하다고 소리치지 않았고 사람들은 앞다퉈 휘발유를 담으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몰려드는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들이 총출동했지만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하왈푸르 경찰서 소속 임란은 “이 고속도로는 평소에도 과속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구간”이라며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출동했으나 이미 주민들이 몰려든 상태라 통제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유조차 전복 직후에는 불이 나지 않았지만 이후 주민들이 휘발유를 담으려고 몰려드는 과정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며 화재가 발생했다. 목격자이기도 한 임란은 “전복 후 1시간가량 주민들이 휘발유를 담고 있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은 일단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오토바이 75대와 자동차 6대가 불에 탄 채 발견됐다. 대부분 휘발유를 챙기러 온 주민들 것이다. 비싼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를 소유한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사고 현장에도 오토바이가 더 많았다. 사고지역 인근 바하왈푸르 도심에 사는 나세르(27)는 “친구가 공짜 휘발유를 얻으러 가자고 다급하게 전화를 해 집에 있는 모든 물통을 챙겨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며 “이미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있었고 나는 간신히 한 통만 채우고 친구랑 빠져나오는 데 등 뒤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동네 주민이고 아는 사람들이라 마음이 아프다”라면서도 휘발유를 팔아 현금을 손에 쥐게 된 것을 뿌듯해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바하왈푸르의 빈민층으로, 이들은 돈이 되는 휘발유를 챙기려다 결국 참사를 당했다. 기름이 쏟아져 언제라도 불이 날 수 있는 위험한 곳으로 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바로 지독한 가난이다.

지난달 취재를 위해 이슬라마바드에 들어갔다가 필자는 깜짝 놀랄 만큼 현지 물가가 폭등한 현장을 목격했다. 파키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 기준 약 3,004달러로 세계 125위의 빈곤 국가이다. 빈곤층 주민들은 하루 평균 2달러 정도로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5년 전과 비교해 밀가루, 설탕, 채소 등 생필품 가격은 거의 두 배 이상 뛰었고 특히 연료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주유소에서는 휘발유가 1ℓ당 72.8루피(약 789원)에 팔리고 있다. 취재 차량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나니 4,000루피(4만3,000원가량)가 들었다. 파키스탄 대학 졸업자의 평균 초임이 한화로 약 1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현지 기자들은 “파키스탄은 소득대비 세계에서 가장 기름값이 비싼 나라”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주요 60개국의 '유류비 고통 순위'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국 중 기름값 고통이 가장 큰 국가는 파키스탄으로, 휘발유 1갤런(3.78ℓ) 가격이 일반인의 하루 수입보다도 높았다.

가난한 주민들에게 전복된 유조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휘발유는 엄청난 횡재였을 것이다. 펀자브주 아메드퍼 이스트의회 의장 막둠 사이이드 하산 길라니는 “비극의 원인은 100% 가난”이라며 “참사로 남성 8명이 모두 사망한 가족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파키스탄 현지 프리랜서 기자 샤히드는 “유조차 운전사도 가난을 벗어나려고 과속을 했을 것”이라며 “한 번 운행에 1,500루피밖에 받지 못하다보니 더 운행을 하려다 과속을 했고 결국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상자 대다수는 전신의 70% 이상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바하왈푸르의 빅토리아 병원에는 부상자들과 희생자 시신이 이송되며 아수라장을 방불케하고 있다. 빅토리아 병원의 의사 바카르는 “병원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화상 환자가 몰려든 상황은 처음”이라며 “3도 이상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현지 경찰은 신원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에 탄 희생자들이 많아 인근 마을을 대상으로 실종자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한 마을에선 주민 절반가량인 40여명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실종자 파악을 전담한 경찰 파케르는 “사고 인근 마을인 아하마드푸르 사르키야 지역을 탐문하며 실종자들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이후 DNA 분석으로 사망자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PD

25일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 바하왈푸르에서 발생한 유조차 화재 사고의 부상자들이 현지 병원에서 화상 치료를 받고 있다. 바하왈푸르=AFP 연합뉴스
25일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 바하왈푸르에서 발생한 유조차 화재 사고의 부상자들이 현지 병원에서 화상 치료를 받고 있다. 바하왈푸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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