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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스크루지가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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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스크루지가 던지는 메시지

입력
2015.12.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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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왔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축일이지만 언제부턴지 모두가 함께 기뻐한다. 지난 16일 조계사에서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등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모여 성탄 트리 점등식을 가졌다. 이제 점차 사라져 가는 풍경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져 오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그런데 왜 이처럼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까지 이날을 기뻐하는 것일까?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그 해답이 담겨있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성격이 매우 괴팍한데다 인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자린고비다. 때문에 거지들도 그에게는 구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조차 그를 만나면 주인을 다른 길로 인도한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런 스크루지에게 동업자였던 말리의 영혼이 나타난다. 영혼은 자기가 살아 생전에 욕심쟁이요 구두쇠였기 때문에 쇠사슬에 묶여 이렇게 고생하는데 스크루지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그를 구원할 세 유령이 차례로 나타날 것을 알린다.

첫 번째 나타난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그에게 외로웠던 소년 시절과 세상을 떠난 착한 여동생, 그리고 돈 때문에 버린 옛 애인을 보여준다.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가난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기쁨을 나누는 서기 크라칫의 집과 스크루지를 동정하고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조카 프레드의 집을 보여준다.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스크루지가 차디찬 방에 홀로 죽어 있는 모습과 마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스크루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얼마나 인색하게 살아 왔는지를 비로소 깨닫고 뉘우친다. 그는 유령에게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데, 깨어 보니 꿈이었고 때는 성탄절 아침이다! 갱생의 기회를 얻은 스크루지는 우선 크라칫의 집에 커다란 칠면조를 보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거액을 기부하고, 조카의 집으로 달려가 성탄절 만찬을 함께 한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 것이다.

성탄절은 이처럼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 열리는 날이다! 2,000년 전 어느 영광스러운 밤에 신이 인간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체념과 절망에 빠진 우리의 삶에도, 갈등과 분노가 들끓는 우리사회에도 그같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어둠과 절망이 마침내 깨어지고 빛과 희망이 탄생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갈등과 미움이 삽시에 사라지고 화합과 사랑이 솟아나는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이날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시 살펴보자, 2015년을 보내는 지금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어떤가를. 청년 실업, n포 세대, 빨대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근로빈곤층, 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 실버 푸어, 비정규직, 일용직, 최저임금, 기본소득, 사교육비, 갑질, 메르스 사태, 폭력 시위, 폭력 진압, 자살률 1위, 지뢰 도발, 핵 위협, 국사교과서 국정화, 금수저, 흙수저, 표지 갈이, 신입사원 명퇴, 부채 폭탄, 망할민국, 헬조선과 같은 용어들이 무엇을 뜻하는가? 어둠과 절망이 아닌가. 갈등과 분노가 아닌가. 체념과 해결 불가능성이 아닌가.

신이 인간으로 세상에 왔다는 말은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유대인이나 이슬람에게는 물론이고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마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당 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은 황금글자로 기록했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믿었고 그것을 통해 로마의 가혹한 탄압과 절망을 극복하는 힘을 얻었다.

믿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상황과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첫걸음이자 탈출구다. 성탄절이 다가왔다. 우리도 믿자! 모든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믿자. 그것을 통해 어둠과 절망, 갈등과 분노를 극복할 지혜와 힘을 얻자. 희망을 갖고 사랑을 품고 새해를 맞자!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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