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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가고시마에서 한국의 미래를 묻는다

입력
2017.0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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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주역들 배출

인재양성 진력한 시마즈 영주의 공로

지도자라면 미래세대 잠재력 꽃피워야

방학을 맞아 일본 가고시마에 다녀왔다. 규슈 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는 이부스키의 온천이나 여전히 화산활동을 하는 사쿠라지마 등이 이국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또한 일본 근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유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도쿠가와 시대와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사쓰마(薩摩)번으로 불리면서, 당시 조슈(長州)번과 더불어 메이지 유신 변혁의 주역 역할을 했다.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成) 등을 배출했다. 이후 근대국가 건설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오야마 이와오(大山巖), 야마모토 곤베에(山本權兵衛), 사이고 쓰구미치(西鄕從道),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와 같은 인물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도쿠가와 시대에 존재했던 250여개의 번 가운데 왜 유독 조슈와 사쓰마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됐는지가 늘 궁금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세 시간을 달려 현지에 도착해 보니, 그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가고시마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는 역사유적은 사쓰마 영주들이 별저로 사용하던 센간엔(仙巖園)이다. 일본 정부가 근대화 발상의 유적으로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규슈 지역 23개 문화유산의 하나이기도 하다. 화산섬 사쿠라지마가 보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이 별장 터에는, 도쿠가와 시대 말기 개명 번주(藩主)로 유명했던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가 1850년대 당시부터 청년 사무라이들을 불러모아 근대 과학기술을 집중 연구ㆍ개발시킨 흔적이 생생하다. 그는 센간엔에 소규모 제철시설인 반사로를 설치해 서구식 대포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개인 연구소격인 슈세이칸(集成館)도 번저에 설치해 당시로서는 첨단 과학기술이었던 제철, 조선, 방적, 유리, 사진, 전신 기술 등을 개발ㆍ실험하게 했다. 당시 일본과 교역하던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서적을 연구하게 했고, 증기선 관련 서적도 번역해 페리 함대 내항 직후 당시 최첨단 함선이던 외륜증기선을 자체 제작한 바 있다. 네덜란드가 1855년부터 나가사키에서 근대적 해군사관 양성을 시작하자, 시마즈 번주는 청년 사무라이 수십 명을 파견해 4ㆍ5년간 해군 건설을 위한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했다. 1858년 그가 숨진 이후에도 후임 번주들이 엘리트 사무라이 10여명을 선발해 영국 등지로 유학을 보내 근대 문물을 습득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근대적 학문과 세계정세에 정통한 인재들이 양성되었고, 이들이 수년 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메이지 유신과 같은 국가적 변화는 시대의 변화를 준비하는 인재들을 어떻게 양성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음을 나는 가고시마 센간엔에 남아 있는 반사로 유적과 슈세이칸을 둘러보며 느꼈다. 그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라도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발달된 문물을 체득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은 지도자의 덕목이란 점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 곧 각 대학을 비롯한 국내 교육기관들이 졸업시즌을 맞는다. 교정을 떠나 사회로 나아갈 청년세대들에게 우리 사회는 미래 건설에 필요한 학문연구와 세계 견문의 기회를 얼마만큼 제공해 주었는가. 한때는 일본보다 더 뛰어난 연구와 교육시설을 집중적으로 설치하고, 국가 지도자들이 최고 교육기관 졸업식에 직접 참석해 청년세대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했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지도자들이 대학 졸업식이나 미래 세대와의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을 담당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정치 지도자들은 일본의 슈세이칸과 반사로 수준을 뛰어넘는 21세기 한국의 교육과 연구 인프라 건설 비전을 갖고 있는가. 청년 세대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꽃피우게 하는 국가전략을 제시하고 있는가. 가고시마 유적들을 둘러보며 우리 미래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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