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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내는 몇 가지 방법

입력
2015.07.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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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떠나거나 머물거나. ‘여행’과 ‘방콕’이다. 둘 다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그러나 한국인은 아직도 휴가를 잘 보낼 줄 모른다. 일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종규 한겨레신문 사회2부장은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기’의 씁쓸함’(한겨레신문 7월 30일자▶전문 보기)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이 일에 저당 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는 차고 넘친다. 우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시간 노동’ 국가다. 연간 평균 노동시간(2013년)이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번째로 길다. 1위인 멕시코(2,237시간)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OECD 평균(1,770시간)과 견주면 393시간이나 많다. 전체 임금노동자 1,743만여명의 46%인 882만여명이 오후 7시 전엔 퇴근을 못하고, 9시 넘어서 퇴근하는 사람도 15%에 이른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를 모두 쓰는 직장인은 22.4%에 그치는 반면, 절반도 쓰지 못하는 이들이 33.4%나 된다… 이처럼 오래 일하고 덜 쉬다 보니 국민의 81.3%가 ‘일상이 피곤하다’고 느낀다.”

화제가 되고 있는 TV광고의 한 장면.
화제가 되고 있는 TV광고의 한 장면.

칼럼은 이어 사회학자 김영선씨의 책 ‘과로사회’를 인용해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악취가 악취인 것도 모르고, 너무 익숙해진 탓에 악취를 맡더라도 얼마나 고약한지 표현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은 물론 사랑, 육아, 연대, 공동체 참여 등 일상적인 ‘관계’를 망가뜨리는 ‘국민병’이므로, 그 예속에서 벗어나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휴가라도 제대로 보내면 좋으련만, ‘과로사회’는 휴가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평소 일에 지쳐 있는데다 휴가도 짧다 보니 바캉스마저 또 다른 일로 여겨진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피서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사회경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휴가는 무시 못할 시장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들은 이미 거대한 여행시장을 만들어놨다. 게다가 요즈음은 머문 사람도 방 안에서 허기진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터넷 쇼핑 같은 것으로 경제에 기여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연휴 기간을 지역별로 차별화해 경제 효과를 늘려보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니 책상 위에 고향에서 온 편지가 놓여 있다. 이승률 청도 군수가 보낸 편지다. 메르스 여파로 관광객이 줄어들고 유통ㆍ서비스 매출이 감소해 지역경제가 침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고향사랑 마음’에 호소하니 더 그렇다. 청도뿐 아니다. 지방의 시ㆍ군치고 ‘고향에서 휴가 보내기’ 캠페인을 안 하는 곳이 없다. 재계도 국내휴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다.”

백영철 세계일보 논설위원이 ‘대통령의 휴가’(세계일보 7월 27일자▶전문 보기) 칼럼에서 거론하는 것도 휴가의 이런 측면이다. 이달 들어 휴가를 소재로 한 신문 칼럼들에서 숱하게 지적한 것처럼 백 위원도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도 관저에서 휴가를 다 썼다. 세월호 참사로 모두가 죄인이던 때다. 야당이 “국상 중 휴가라니”라며 눈 흘기던 때다. 올해는 다르다. 메르스 후유증을 극복하려면 휴가가 시끌벅적해도 무방하다. 대통령이 앞장서 지방의 이곳 저곳을 다녀도 보기 좋을 것이다. 고향마저 애절하게 부르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 참모, 부처 장ㆍ차관들에게도 고향이 있다. 이들에게도 고향의 시장ㆍ군수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을 터. 대통령의 재가가 없으면 그 편지는 무용지물이 될 처지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 각 부처가 ‘국내여행 가기 운동’을 솔선수범하라”고 주문한 대통령은 다 아는 대로 ‘방콕’을 선택했다. ‘국내여행 가기 운동’의 방점은 ‘국내’이지 ‘여행 가기’는 아니었던가 보다. ‘머물기’는 개인으로서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공인의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그 시간을 휴가 이후 국정을 위해 유용하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떠나는’ 휴가를 부추겨서라도 경제가 살아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실망을 안겨줬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여름 공개했던 휴가 모습.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 각 부처가 ‘국내여행 가기 운동’을 솔선수범하라”고 주문했던 박 대통령의 올 여름 휴가지는 ‘방콕’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여름 공개했던 휴가 모습.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 각 부처가 ‘국내여행 가기 운동’을 솔선수범하라”고 주문했던 박 대통령의 올 여름 휴가지는 ‘방콕’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혹시 아직도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망설이는 분들을 위한 ‘팁’을 제시한 칼럼 세 편을 소개한다. 아, 이건 너무 ‘마이너’하므로 숨겨진 보물 여행지, 방콕하며 읽기 좋은 책 같은 것을 기대하는 분들은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8월은 역시 휴가의 계절이다. 집에서 열심히, 진지하게 아무것도 안 하며 여름휴가를 보내는 이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바로 가까운 쓰레기장이다…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먹다 남은 음식, 찌그러진 플라스틱, 깨진 유리잔, 망가진 가전제품…. 하지만 생각해보자. 만약 우주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망가진 가전제품은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던 스피커였고, 다른 누군가를 세상과 연결해준 컴퓨터였다. 맛있는 음식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었을 것이고, 깨지기 전 유리잔은 멋진 와인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 모른다… ‘과거의 희망과 행복이 오늘의 쓰레기라면, 오늘의 행복과 희망은 미래의 쓰레기다. 모든 쓰레기는 과거 누구에겐 꼭 필요한 물건이었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 역시 언젠간 쓰레기가 될 것이다.’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을 쓰레기장은 주고 있다.”(김대식의 브레인스토리 ‘쓰레기장에서의 휴가’, 조선일보 7월 30일자▶전문 보기)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무엇이 삶을 쓸쓸하게 하는 것인가. 아버지의 세월을 먹고 자란 나도 머지않아 웃으면서 집어 던진 빈 우렁이 되어 저 생의 밭머리를 쓸쓸하게 바라볼 것이다. 뒤늦게 아는 것이 가장 먼저 아는 것이라는데, 나는 자꾸 우태복 할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아닌가 생각되어 가슴 먹먹하다. 건강 생각하셔서 고만 잡수시라고 말씀드릴 용기가 없다. 차라리 그 빈 잔에 뿌연 막걸리를 묵묵히 부어드리고 싶다. 그래서 이런 생각 한 번 해보았는데 어떤가. 이번 휴가는 어린 아들 딸 차에 태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개울가며 들판에 풀어놓고 자식과 며느리는 늙은 아버지 어머니와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 잔씩 마셔보는 것이…. 그러면 그림자보다 더 가벼운 저 몸에 따스한 샘물 고여 막걸리를 좀 덜 잡수시지 않을까.”(정용주 시인 ‘그림자보다 가벼운’, 한국일보 7월 25일자▶전문 보기)

“휴가철입니다.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다에 갑니다. 물론 슬픈 일이 생긴 사람들도 바다에 가곤 합니다. 바다만큼 슬픔을 잊기 좋은 장소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남은 전생애로 바다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죠. 그들을 떠올리며 시인은 중얼거립니다. 이번 생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울고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고요. 내 아이는 내 곁에 있지만, 내 엄마는 고향집에 계시지만, 내 배우자는 곁에서 곤히 자고 있지만, 그렇지 않는 이들의 슬픔을 위해 그렇게 살겠다고요.

시인의 결심을 들으니 두려워집니다. 세상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말한 유마힐처럼 살겠다는 거창한 결심은 안 해봤거든요. 그러다 문득 슬퍼집니다. 시인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우는 삶을 이미 살아본 것 같아요. 거창해서가 아니라 지독하게 살아봐서 그 슬픔을 너무 잘 아는 것이죠. 이 순정한 마음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으나 바다에 가면 자기 생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내려두고 염원해볼게요. 아직도 누군가의 아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남편이었던 9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어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들이 잠시라도 혼자 우는 사람이 아니기를.”(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깊은 일’, 한국일보 7월 24일자▶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아침을여는시/2015-07-23(한국일보)
아침을여는시/2015-07-2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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