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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여성혐오의 뿌리: 남자의 일생

입력
2016.05.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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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라는 말에 엄마는 겁부터 난다. 말하면 알아듣고 따라주는 딸과 달리 아들은 몸으로 제지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대체로 아들은 부잡스럽고 활동적이어서 딸보다 양육이 고달프다. 툭하면 부수고 잘 다친다. 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하는 게임은 부모와 아들 사이를 거의 원수로 만든다. 잘 가르쳐 아들들을 국가의 동량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의 희망을 배반하니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하루 종일 실랑이에 지친 어머니의 하소연에 열 받은 아버지는 아들 뒤통수를 난데없이 때리기도 한다. 종일 들은 잔소리에 지친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결정적 타격에 발끈, 한밤중이라도 집을 나간다. 완력을 써서라도 붙들 수 있는 딸과는 차원이 다른 반항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여교사가 대다수인 학교가 수염 부숭부숭한 남학생들을 용이하게 관리할 수 있겠나. 성실하고 수업 태도도 좋은 여학생들에 비해 남학생들 태반은 문제아다. 1등부터 10등까지는 여학생이고 11등부터 간신히 남학생이 낀다. 남성호르몬이 솟구쳐 한참 공차고 뛰어놀아야 할 남학생들은 가만히 앉다 보면 열불이 나 폭력적인 게임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 이제는 자동 셧다운까지 등장하는 시대라 그것도 여의치 않다. 꼼꼼한 여학생들에 비해 내신이 불리한 남학생들이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들다. 군대 문제는 또 어떤가.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결정적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대기자가 많아 입대를 앞두고 허송세월하는 시간과 제대한 후 취업이나 복학까지 기다리는 날짜를 생각하면 길게는 3, 4년의 세월이 날아간다. 한참 경력을 쌓아야 하는 20대, 3년여의 세월 허비는 충격이 크다. 연애와 결혼은 또 어떤가. 집도 차도 없고, 송중기 같은 외모도 없고, 유산은커녕 놀고 있으면서도 며느리에 대한 기대만 큰 부모님,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형제 등, 뭐하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여성들 앞에서면 위축되니 허세라도 부리려 한다. 나이 먹는다고 직장과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니 자신감이 샘솟을 이유도 없다. 어렵사리 결혼한 경우도 특별히 다를 바 없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아내 앞에서 작아지는 남편들이다. 일 년에 서너 번 본가에 갔다 오는 날이면 이혼하자고 드잡이를 하는 아내 때문에 늙은 부모님 찾아뵙는 것도 싫다. 아내 몰래 학비 대주신 부모님 용돈이라도 드리고 싶고 자기 계발도 하고 싶지만, 월급이 통째로 아내에게 가니 비자금 마련도 쉽지 않다. 중년 이후는 더 심각하다. 내 자녀만은 최고로 키운다며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는 아내와 노후 자금은 모아야 한다는 남편의 입장이 부딪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내와 달리 밖으로만 돌다 보니 늙어서도 외로운 섬이다. 가사와 손주 돌보는 일이 있는 할머니에 비해 할아버지들은 고작 밖에 나가 주는 게 식구를 돕는 일이다. 이른바 ‘여성혐오’의 뿌리가 될 것 같은 남자의 일생 정리 요약본이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겠지만, 어머니, 아내, 딸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신 삼종지도를 원칙으로 삼아야 그나마 자기 자리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위의 시나리오를 여성의 입장에서 완전히 거꾸로 새로 써서 사회적 불평등으로 넘쳐나는 상황들로 재구성해 보면 ‘남성혐오’가 이해될 것이다. (여성이 경험하는 불평등과 사회 부조리는 지면사정상 생략한다.)

여성과 남성은 잉태될 시기 양성적 존재였고 무의식까지 들어가면 일생 그렇다. 여성의 무의식으로 남성성이 들어가고 남성의 무의식으로 여성성이 들어가는 것뿐이다. 유전자를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게 코딩되어 있다. 자본과 경쟁논리가 그런 본능적 신호마저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힘들지 않게 많은 돈을 벌어 여가생활도 즐기는 좋은 일자리”와 “힘든 가사나 육아는 뺀 아름답고 낭만적인 결혼생활” 등등 행복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현실은 오히려 더 빡빡해진 시대라 불만이 누적되는 것도 있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어딘가로 폭발되어야 하는데 근본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은 막혀 있는 것 같으니 성대결이라도 해야 감정이 좀 치유되는 것 같을지 모른다.

사회적 혐오현상은 어느 한 쪽의 개인적 잘못이 아니라, 빈부갈등에 따른 사회 불안,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교육제도의 모순과 부조리, 인구구조의 불균형 등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대신, 상대방 성에게 모든 부정적인 것을 투사하는 요즘의 여성혐오, 남성혐오는 미숙한 이분법의 논리일 뿐이다. 사춘기 이전인 잠복기(latency)에 해당하는 열 살 전후의 어린이들은 보통 상대방 성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 적개심을 보인다. 바로 그 시점으로 퇴행하고 있는 게 요즘 시대정신이다.

쓸데없이 그런 병리 현상을 지적하다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에게 집단 돌팔매라도 맞을까 솔직히 겁이 좀 난다. 젊은이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소모적 성차별논쟁에 빠져 있는 동안, 기성세대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작 더 심각한 모순과 부조리가 엉뚱한 이성혐오 싸움으로 인해 소리 없이 잘 덮어지고 있으니, 다행이라며 웃을 사람들도 꽤 될 것 같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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