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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포용적 복지국가

입력
2017.11.02 14:4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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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적폐청산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완성은 민생안정에 달려 있다. 한 일간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촛불 1년 이후 한국 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나아졌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고 응답했다. 보수 정부 시기보다 자신의 삶이 나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1.8%에 불과했다. 반면 변한 것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63.7%에 달했다. 적폐청산에 환호를 보내는 여론이 언제 비판세력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형국이다.

우리가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문서에 따르면 포용적 복지국가란 모두가 복지를 누리는 국가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포용적 복지국가를 약자를 포용하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포용국가이자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국가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복지지출을 늘리겠다는 것 이외에 포용적 복지국가가 어떤 복지체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국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포용적 복지국가의 담론에는 복지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경제체제의 개혁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1960년대 산업화 이래 노동자의 숙련과 생산기술이 분리된 조립형 수출주도형 성장체제였다. 상상해 보라. 정권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재벌 대기업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 최신의 자동화 생산설비를 갖추고 해외시장에 상품을 파는 경제체제에서 민생안정은 정권과 기업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권과 기업의 관심사는 구매력이 있는 해외시장의 소비자와 첨단 자동화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수출상품을 차질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뿐이다.

이런 수출 독주형 성장체제에서 수출과 관련 없는 대부분 국민은 정권과 기업의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사회보험이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에게 확대되지 못하는 것도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다. 생산과 소비를 선순환시키지 못하는 복지지출은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조립형 수출독주형 성장체제를 유지하며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강화된 복지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사회보험에 배제된 계층을 위해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과 같은 보편적 수당과 공적 사회서비스를 낮은 수준에서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 포용적 복지국가는 사회적 혼란을 막고 국민 생활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잔여적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잔여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벅찬 과제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경제를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성장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서 포용적 복지국가는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와 취약계층만이 아닌 광범위한 노동자의 숙련을 향상시키는 복지체제로 복무한다.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첨단 자동화를 일정 수준에서 대신할 수 있는 광범위한 숙련된 노동력에 의존한다면 복지체제의 역할은 국민의 삶을 지원하는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체제로 설계될 수 있다.

민생의 어려움을 단순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복지지출 확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공적 복지의 확대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독주형 성장체제를 숙련된 광범위한 노동력에 기초한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성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포용적 복지국가가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문재인 정부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복지 확대만이 아닌 경제체제의 성격을 바꿀 때이다. 경제체제의 개혁 없이 민생안정은 요원하다. 복지국가와 경제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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