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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움직이자 무뎠던 감각이 생생히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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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움직이자 무뎠던 감각이 생생히 살아났다

입력
2015.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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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질거리는 나의 손

김성원 지음

소나무 발행ㆍ264쪽ㆍ1만3,000원

필요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써 본 일이 있는가. 가위, 칼, 그릇 따위의 것들 말이다. 클릭 한 번이면 미국 쇼핑몰에서 파는 가전제품까지 집 앞으로 가져다 주는 시대에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자급자족 타령이냐 싶을 것. 하지만 “(손의 체험이) 창조의 흥분과 기쁨을 안긴다”며 ‘만드는 손’ 예찬론을 펼치는 이 책을 본다면, 당장 대장간에라도 가보고 싶어질지 모른다.

30대 초반까지 서울시철거민협의회, 노동정보화사업단, 노동정치연합 등에서 빈민ㆍ노동ㆍ진보정치 관련 단체 활동가로 일해온 지은이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하다 2007년 전남 장흥으로 귀농해 흙부대집을 짓고, 각종 전통기술, 생활기술, 수공예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이 책을 일컬어 남들이 앞으로 걸을 때 “뒤로 걸으며 질문하는 악취미의 결과”라고 몸을 낮추긴 했지만 그렇게 보기엔 철학적 통찰이 남다르다.

“호소하고 싶다. 모든 것을 공장에 맡겨 그로부터 제조된 물건으로 생활을 때우고, 기기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일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일본 공예연구가 이데카와 나오키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책은 그가 흙부대집을 짓고, 집의 토방을 가로막아 베틀실을 만들어 전통 직조를 하고, 대장간 워크숍 ‘철든 사람들’을 열어 역동적 축제를 벌이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김성원씨는 고효율 화목난로 공모전인 '나는 난로다'의 공동기획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의 고효율 화목난로 등의 이론을 국내에 본격 소개했다. 소나무 제공
김성원씨는 고효율 화목난로 공모전인 '나는 난로다'의 공동기획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의 고효율 화목난로 등의 이론을 국내에 본격 소개했다. 소나무 제공

도대체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을 모아 대장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축제를 벌여 어쩌자는 건가 싶지만, 남도 끝에 모여든 초보 대장장이들은 작가의 시범에 따라 “얼굴에 그을음이 묻은지도 모르고” 밤 늦도록 쇠망치를 두들기며 웃어댔다. “불과 쇠, 근원적인 두 가지가 만났으니 그 무엇인들 끄집어내지 못할까. 현대 사회의 틀 안, 각자의 생활 속에 단단히 봉인되었던 본능들이 기어코 뛰쳐나오나 보다.”(45쪽)

그는 최근 한국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적정기술의 현 주소와 개념, 이론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풀어내는 한편 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가 이토록 손을 쓰고 만드는 일의 가치에 몰두하는 까닭은 비단 창조의 기쁨과 개인적 만족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자신의 손과 삶을, 삶을 풍성하게 일구던 재주들이 사라진 풍경을, 한번쯤 돌아보길 희망한다. 나아가 이를 화두로 연대하길 꿈꾼다.

“나는 공예와 기술이라는 화두를 들고 일인 듯 일 아닌 듯, 세상을 엮어나가고 있다. 틈나는 대로 베틀을 꺼내 직물을 짜며, 틈틈이 사람들을 씨줄날줄로 엮고 싶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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