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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저층 건물은 비전문가가 내진 검증… “피부과에 엑스레이 판독 맡긴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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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저층 건물은 비전문가가 내진 검증… “피부과에 엑스레이 판독 맡긴 꼴”

입력
2017.11.24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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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 이상 구조기술사 검증 의무

5층 이하는 대부분 비용 아끼려

건축사에 내진설계 검증 맡겨

작년 하반기 건축물 절반 이상

1차 검사서 내진설계 부적합

지진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의 한 빌라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공한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려는 이재민의 이삿짐을 이사차량이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진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의 한 빌라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공한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려는 이재민의 이삿짐을 이사차량이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연면적 965㎡의 철골조 건물인데 시청에서 응력(지진 등 외부 힘이 작용할 때 물체 내부에 생기는 저항력)에 관한 값을 다시 확인해 수정된 내용을 달라고 합니다.”

지난 3월 공학용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인 마이다스 아이티의 내진설계 프로그램 ‘마이다스 이젠(eGen)’ 게시판에 올라 온 글이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건축사가 내진설계 등을 검증할 때 사용하는데, 건축사가 응력 값 계산을 못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최근에도 해당 게시판엔 ‘구조기준 부적합 사항을 보완한 구조 계산서를 부탁한다’는 기술자문부탁 글이 매일 10여건씩 올라오고 있다. 그 만큼 내진설계 등을 검증할 능력이 안 되는 건축사가 많다는 얘기다. 한 구조 전문가는 “내진설계 전문 지식이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질문들”이라고 지적했다.

포항 지진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5층 이하 건축물의 내진 검증이 사실상 비전문가에게 맡겨져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행 건축법은 6층 이상 건물의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구조기술사의 구조안전 검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반면 5층 이하 건물은 검증 주체가 건축사 또는 구조기술사로 돼 있다. 때문에 대다수 건축주는 비용을 줄이려 건물을 디자인ㆍ설계한 건축사에게 내진설계 검증까지 맡기고 있다. 그러나 건축구조를 전공한 한 대학 교수는 “이는 사실상 피부과 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판독까지 하라는 것”이라며 “지자체의 건축허가 과정에서 구조기준 부적합 사항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토부 조사에서도 전국 건축물 10곳 중 1곳은 내진설계 오류 등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하반기 착공한 전국의 건축물 중 무작위로 580곳 추려 내진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평가한 결과다. 더구나 1차 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 54.5%(316곳)나 됐다. 이후 두 차례 수정 과정을 거친 후에도 최종적으로 8.1%(47곳)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결론 났다. 특히 총 376건의 부적합 사항 중 내진설계(64건ㆍ17%)와 특별지진하중(101건ㆍ27%) 오류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국토부의 건축구조기준은 ‘필로티 등과 같이 구조물의 불안정성이 있는 경우 건축물을 설계할 때 특별지진하중(일반 지진하중의 2.5배)을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고 않고 있다는 얘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단독주택(다가구 포함)의 경우 특별지진하중 설계 오류가 전체의 44%(115건 중 51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장은 “5층 이하 건축물도 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를 점검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가장 확실한 보완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국에 1,000여명 남짓인 구조기술사(건축사는 1만3,000여명)가 연간 5만동 남짓 지어지는 2~5층 건물을 모두 확인할 순 없는 만큼 건축사의 역량을 키우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경력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자격을 인정하는 인정기술자 제도 도입을 내진설계 부문에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축허가 과정의 내진설계 검증을 꼼꼼히 하기 위해 구조기술사ㆍ건축사ㆍ건축구조부문에서 5년 이상 일한 공기업 실무자 등으로 구성된 지역건축안전센터를 내년 4월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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