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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언론 잘못할 때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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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언론 잘못할 때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 할 일”

입력
2017.07.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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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치 관여 여론조작 정황 드러나

“국정원이 여당 후보등록 교통정리 해줘야

꼬리가 안 잡히도록 하는 게 정보기관

기사 잘못 쓴 매체 없애도록 공작해야”

내달 30일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선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원장 때 작성된 부서장회의 녹취록에는 총선과 지방선거 후보 공천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압적 언론대응을 지시하며 국내정치와 여론조작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 심리로 24일 열린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재판부에 새롭게 증거로 제출했다. 원 전 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을 담은 문건으로, 앞서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은 주요 발언 부분이 지워진 상태였지만, 검찰은 최근 국정원에서 지워졌던 부분을 복구한 문건을 다시 받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12년 총선과 지방선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2011년 11월 18일 회의록에는 원 전 원장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며 “지부장들은 각자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챙겨보라”고 말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1년 앞둔 2009년 6월 9일 회의에서는 “1995년 선거 때도 구청장은 본인들이 원해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은 없고, 국정원에서 나가라 해서 나간 거다”라며 “우리 지부에서 지자체장이나 의원 후보들을 지금부터 잘 검증해서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되겠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후보 공천 과정에서부터 국정원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2011년 11월 18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내년에 큰 선거가 두 개나 있는데, 정확한 사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서 선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건 우리 국정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온라인, 오프라인 대처에서, 특히 여기 지부장들께서 관계 단체들이랄까 중간지대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느냐에 따라 (선거를) 바꿀 수도 있고, 직원들 전체가 아이티(IT)라든가 이쪽에 관계되는 부서만 보는 게 아니고 전 직원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신경 쓰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통상 (국정원) 직원들 정치 관여하지 말라는 건 직원 사적 이익과 관련해 하지 말라는 취지이지 정책적으로 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건…(아니다)”라고 말하며 정치개입이 정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국정원을 정권의 보위기관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1년 11월 18일 녹취록에서 그는 2009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압승을 거둔 사례를 언급하며 “제대로 된 인물이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 지금부터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 쓰자. 현 정부 대 비 정부의 싸움이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했다고 하지 않으면 확인이 안 되도록 하는 게, 그러니까 꼬리를 안 잡히도록 하는 게 정보기관”이라며 은밀히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미 FTA를 물리적으로 처리한다면 한나라당이나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일이 벌어질 텐데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대처하지 말고 지금부터 칼럼이고 신문 곳곳에 가서 다 준비해 놓았다가 그날 ‘땅’ 하면 바로 그날 아침 신문에 실리도록 준비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되는데 원장 입에서 얘기 안 하면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잖아요”라고 직원들을 질책했다. 정부 비판 여론을 사전에 차단하라는 지시다. 그는 “뭐든지 선제대응을 해야지, 하고 난 다음에 비난 기사 실리고 양비론 비슷하게 해 가지고 다음에 칼럼 몇 개 실려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지방이든 중앙이든 방송이든 미리 사설도 쓰고 그 다음 칼럼 하나 실리고 그 다음에 잘했다고 하는 광고까지 들어가서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대비를 해야지”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언론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드러났다. 검찰이 제시한 2009년 12월 18일 녹취록에서 원 전 원장은 “(기사)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잘못 나면 그것을 어떻게 죽이려고 해야지 어떻게 기사가 났는데 다음 보도를 차단시키겠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기사를 못 나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지 이게 뭐냐. 잘못할 때마다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지 그냥 가서 매달리고 어쩌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을 마무리하는 결심공판이었지만 재판부는 문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녹취록을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며 “원 전 원장의 범죄는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반헌법 행위”라며 “소중한 안보 자원이 특정 세력에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불법정치 선거관행을 근절하려면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진술에서 “저는 정치중립과 선거중립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간부들과 나라를 걱정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범죄로 보이는 게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강변했다. 원 전 원장의 선고공판은 다음달 30일 열릴 예정이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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