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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오래된‘정치 신상’(新商)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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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오래된‘정치 신상’(新商) 반기문

입력
2016.1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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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갈망이 정치신인 현상 불러

외교역량 돋보이나 지구촌 평 가혹

지역ㆍ진영 넘어 철저한 검증 필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에이브러햄 링컨 묘소를 방문, 링컨 흉상의 코를 만지고 있다. 링컨 흉상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에이브러햄 링컨 묘소를 방문, 링컨 흉상의 코를 만지고 있다. 링컨 흉상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연합뉴스

패션시장만큼이나 정치시장에서도 신상(신상품) 프리미엄이 통한다. 근래의 대표적 정치 신상은 안철수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출현해 2012년 대선을 전후해 돌풍을 일으켰다. 탄핵 정국에서 급부상한 이재명 성남시장도 잠시 조정을 받고 있지만 차기 대선 시장의 신상이라 할 만하다. 당락과는 별개로 대선을 앞두고 인기를 누린 유력 정치인들은 대개 정치 신상 프리미엄을 누렸다.

최근 사실상 차기 대선 출마 뜻을 공개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정치 신상 프리미엄을 누리는 듯하다. 올드(old) 이미지가 강한 그를 정치 신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하지만 직업 외교관으로만 살아오다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선시장에 처음 진입한다는 점에서는 어쨌든 정치 신상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26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그는 8주 만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게다가 새누리당 분당으로 대선 다자구도가 가속화하면서 러브 콜이 쇄도하고 있다.

아무나 정치 신상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안철수 현상에는 새 정치에 대한 대중의 강한 열망이 작용했다. 한때 잘 나가던 정치 신상이던 이인제, 이회창도 당시 나름대로 대중의 갈망에 호응하는 뭔가 있었다. 이재명 현상 배경에는 분노한 민심의 아웃사이더 야성에 대한 강한 끌림이 감지된다.

그렇다면 반기문에게서 대중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통령 아니면 유엔사무총장이라고 답했던 중ㆍ장년층에게는 자부심의 충족이 있을 수 있다. 북한 핵 문제에 더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한층 파고가 높아질 국제적 갈등 속에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한 그의 외교역량이 절실하다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외교관만으로 살아왔고, 최근 10년간 외국에만 머문 그가 우리사회 내부의 심각한 현안을 풀어갈 역량과 리더십이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의 최대 강점이라고 해야 할 외교역량과 국제분쟁 해결 능력에 대해 지구촌의 평가는 가혹할 정도로 박하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해 “너무도 무능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라고 혹평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리더십을 “유엔사상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자국의 이해관계와 편견 등도 작용했다고 봐야겠지만 ‘외교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섣부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외교부장관 시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한 시사주간지에 보도된 것도 개운치 않다. 반 총장이나 박 전 회장 측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친노 진영 주변에서는 그 동안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한방에 훅 보낼 수 있다는 호언이 잇따랐던 데 비춰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닌 것 같다. 사실여부를 떠나 한때 같은 배를 탔던 사람들이 진흙탕 의혹 공방을 벌일 때 국제사회에서 나라 위신은 또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에 참담함이 앞선다.

역대 대선 때마다 등장했던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는 사라져야 할 구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대선후보 검증 실패가 가져오는 폐해는 엄청나다. 진영논리, 지역주의 등 객관적이고 철저한 검증을 막는 요인이 많지만 또 다시 실패를 되풀이 할 수는 없다. 갑자기 뜬 정치 신상의 프리미엄 인기몰이는 특히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차기 대선은 탄핵 사태로 물리적으로 충분한 검증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바람을 타고 갑자기 뛰어든 유력주자가 어지러운 이합집산 속에 정치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역량과 인물됨됨이에 눈감고 지역주의와 진영논리에 갇혀 막연한 기대나 환상에 빠진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반기문이든 또 다른 주자든 검증 없이 무임승차해 촛불 민심을 훔쳐 날로 먹는 일을 막으려면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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