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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금리 1% 시대, 서민 부채의 함정

입력
2015.03.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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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기준 금리 1% 시대가 도래했다. 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 금리를 2.0%에서 1.75%로 인하한다고 깜짝 발표를 한 것이다. 취지는 물론 경기 회복이다. 경제부총리는 “기준 금리 인하가 경제의 활력 회복과 저물가 상황 완화에 도움될 것으로 기대”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위축된 소비와 투자를 부추겨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는 만병통치약이 된 셈이다.

금리 인하는 가라앉은 투자나 소비 심리를 부추길 수도 있다. 기업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 투자를 하고, 서민들은 대출 받아 집을 사거나 높아진 전세금을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져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심리적 여유가 생겨 소비를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해 두 차례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소비 촉진이나 경제 성장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왜 투자와 소비가 이토록 가라앉은 것일까? 저조한 가계 소득과 심각한 가계 부채 때문이다. 실업과 비정규직의 급증, 영세자영업의 몰락으로 서민의 가계소득은 줄어든 반면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4년 말 가계부채는 1,089조원으로, 2013년 말 1,021조원에서 크게 늘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서브프라임 사태 전 미국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또 금리를 인하했다.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실업자, 대형마트에 고객을 빼앗긴 영세업자, 전세난에 내몰린 무주택 서민들, 이들에게 정부가 권하는 것은 결국 이자를 낮출 테니, 빚을 내서 살라는 것이다. 금리 인하는 서민들을 부채의 함정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 금리 인하는 환율ㆍ주가 인상으로 대기업과 자산계층에는 도움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커질 수 있다.

가계 부채 급증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이다. 2014년 증가한 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7.3조원으로 55%를 차지했다. 금리 인하는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도록 할 수 있다. 집 없는 서민은 좀 더 쉽게 대출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자산가는 낮은 이자의 은행 예금보다 집값 상승이 기대되는 부동산 시장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주택보급율 100%가 되지 않던 과거와 다르다. 신규로 구입할 실수요자는 한정돼 있고, 전월세 가구의 대부분은 대출 금리가 내리더라도 주택구입능력이나 대출상환능력이 없는 가구로 추정된다. 과잉공급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은 항상 잠재되어 있는 반면 저금리가 지속될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출을 받아 무턱대고 집을 샀다가 집값은 오르지 않고 금리만 오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2000년대 초 미국은 IT 산업의 쇠퇴와 9ㆍ11 사건 및 아프간?이라크전쟁 등으로 경기가 악화하자 초저금리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주택대출 금리가 내렸고,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다. 하지만 2004년 저금리 정책이 끝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금리가 올라갔고 부동산 거품도 꺼졌다. 저소득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갚지 못했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다시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조만간 기준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우리도 미국처럼 금리 인하로 경기를 회복하고 다시 금리를 인상하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정이 미국과 다르다. 저금리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자본이 급속하게 유출될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위기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금리 인하로 회복시키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 부채는 이미 서민들의 목을 조르고 있고 부동산 시장은 언제라도 거품이 꺼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금리 인하 정책이 아니라 가계 대출과 전월세 대책이 시급하고, 임금 인상과 내수시장 확충을 위한 경제의 질적 개선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병두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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