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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트럼프의 요란한 대북 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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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트럼프의 요란한 대북 확성기

입력
2017.02.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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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도발은 미국의 엄포 시험용

선제타격 여전히 비현실적 수사 불과해

트럼프 대외 정책 신뢰도 확보 우선돼야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에서 첫 미사일을 쐈다. 성능도 위협적으로 고도화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육상용으로 개량한 새 유형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데, 사전에 노출되기 쉬운 액체연료가 아닌 고체연료를 장착한 데다 산악지대나 들판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무한궤도형 이동식 발사차량도 갖춰 은밀성과 기동성을 확보했다. 한마디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대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의 선제타격 개념인 킬체인이나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가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유사시 한반도 증원군이 집결해 있는 일본 오키나와나 괌 기지도 타격권이어서 미국에도 발등의 불이다.

지금 트럼프 정부의 외교ㆍ안보 라인은 강성일색이다. 의회에서도 김정은 정권에 대한 자극적이고 적대적 발언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온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선택을 염두에 둔 ‘새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타격방안을 보고하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 대북정책의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는 아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당장이라도 북한을 때릴 기세다.

김정은이 이런 미국을 상대로 강하게 나온 것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자기 식으로 핵 국면을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트럼프 정부가 아무리 위협해도 자신을 강제할 수단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북폭이 전면전으로 이어져 남북에 파멸적 결과가 초래될 것을 우려한 남측이 대북 선제공격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사활적 이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이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심각하게 검토했던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김영삼 대통령은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 대사가 “미국 민간인을 한국에서 철수시키겠다”고 하자 “미국이 우리 땅을 빌려 전쟁할 수는 없다. 한국군 통수권자로서 60만 군인 중 한 사람도 동원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반발해 북폭 카드를 포기시킨 적이 있다. 이런 판단이 맞다면 북한은 코에 손 하나 안대고 미국의 공격을 저지할 이중의 방어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누가 맞을까. 존 울프스탈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트럼프에게 엄포를 증명해 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트럼프가 엄포를 증명할 마땅한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선제공격과 관련된 상황은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더욱이 지금 북한의 핵능력은 그때와는 천지차이다. 당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초기단계였다. 북한의 반격이 별게 없으리라는 판단에서 북폭이 거론됐을지 모르지만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수십 개 보유한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다. 북폭이 가져올 괴멸적 위험성을 따지자면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다. 트럼프의 북핵 대응이 제한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북한이 겁먹기를 바라는 정도의 선제공격 카드 말고 다른 수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 대북 접근법’의 실체를 의심하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트럼프는 안보보다는 경제, 더 적나라하게는 돈벌이가 우선이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동맹을 거듭 확인했지만, 일본에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시키고, 통상에서 일본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하나의 중국’을 재고할 수 있다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는 존중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도 트럼프 안보 공약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미국 외교협회는 최근 대화의 문턱을 대폭 낮춰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특별보고서를 냈다. 비핵화에서 ‘검증가능한 감축’으로 대화의 목표를 낮춰야 한다는 ‘신 페리 프로세스’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발 신호에 경거망동하거나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직 트럼프는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아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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