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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안전사회를 위해서는

입력
2015.01.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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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적합한 문화 위에서나 빛나

천수답이라고 비만 기다리고 있을까

국민적 인식ㆍ행동의 변화 안 보여

문전옥답(門前沃畓)의 사전적 의미는 ‘집 가까이에 있는 기름진 논’이다. 농업사회에서 문전옥답은 가족의 생계와 문화생활을 지탱하는 축이었다. 노동력은 남아 돌았고, 모내기나 추수 때의 일시적 노동력 부족은 두레나 품앗이, 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땅, 그것도 같은 노동력으로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좋은 땅이고, 그 전형이 문전옥답이다.

왜 ‘집 가까이’의 ‘기름진 논’일까. 토양에 유기질 성분이 풍부한 데다 고운 진흙 층이 발달해 투수성(透水性)이 낮다는 뜻에서의 기름진 논은 집 가까이가 아니어도 있다. 강가의 퇴적 토양이나 바닷가 간척지, 심지어 산골짜기에도 그런 땅은 있다. ‘문전옥답’에는 특유의 사회경제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수리관개(水利灌漑) 시설과 노동력 절감, 신속한 위기관리 가능성 등이다. 농촌 마을이 대개 강 가까운 평지에 있음을 떠올리면 알기 쉽다. 날이 가물어도 동네 봇도랑 주변 논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거꾸로 큰 비가 내릴 때 재빨리 물길을 터주고, 바람에 쓰러진 벼를 바로 일으켜 세워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먼 논을 살피려면 종일 걸려도, 문전옥답은 금세 둘러볼 수 있다. 점심이나 새참, 농기구 운반도 수월하다.

그 정반대가 천수답(天水畓), 즉 비에 의존하는 논이다. 산비탈의 밭을 억지로 논으로 바꾼 것이라 물이 나지도 않고, 가까이서 끌어댈 물길도 없다. 천수답 농사는 기본적으로 비가 얼마나 제때에 내릴지에 달렸다. 모내기 철이 다 가도록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도 달리 방법이 없어 하늘을 원망하며 발만 구르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는 한국의 안전관리, 재난대응 태세의 허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제도의 허술함은 아무런 관개시설이 없는 천수답에 비유할 만했다. 허술한 안전관리 제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형 사고를 불렀고, 사고 직후의 구난태세도 엉성해 초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그 뒤 ‘국가개조’라는 거창한 구호가 등장하고, 우여곡절 끝에 관련 법제도 마련됐다. 행정조직도 바뀌었으니, 제도적 정비는 일단락됐다.

그럼 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많이 안전해진 것일까. 며칠 전의 의정부 화재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우편함 옆의 오토바이에서 비롯한 불이 건물 외벽을 타고 안으로 번지고, 옆 아파트로까지 옮겨 붙었다. 복잡한 상업지역에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규제 완화가 아니었다면 작은 불로 끝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러니 천수답 수준의 제도를 손가락질해 마땅하다. 아울러 사고가 나서야 비로소 확인되는 제도의 허점이 다른 분야에도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을 가능성 또한 짙어졌다.

그런데 천수답 농사라고 하늘만 쳐다보는 게 아니다. 봄 가뭄이 길었던 어느 해 모내기 철 막바지에 비를 기다리다 지쳐 아버지와 함께 천수답 모내기에 나섰다. 한참 떨어진 작은 계곡에서 물을 퍼날라 붓고, 발로 흙을 밟아 진흙으로 이겼다. 아버지는 물지게로, 아들은 작은 양동이로 물을 퍼 날라 모를 꽂느라 한 마지기 남짓한 논의 모내기에 해가 기울었다. 양수기로 단숨에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지금 생각하면 발버둥에 가까웠지만, 그 덕분에 평년만은 못해도 다른 천수답보다는 많은 쌀을 수확했다.

의정부 화재에서는 무분별한 주차로 소방차가 제때에 화재 현장에 다가갈 수 없었고, 10층 이하 건물이어서 ‘11층 이상’에는 설치가 의무화된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완강기만 제대로 사용했어도 화재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편의만 생각하고 만일의 경우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문화, 법제의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파고드는 편법적 발상,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개개인의 안전의식 등의 실태가 확연하다.

제도는 그 토양인 문화와 들어맞을 때만 빛을 발한다. 어떤 완벽한 제도라도 그에 상응할 문화 변화 없이는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하물며 제도 완비가 아득한 마당에 언제까지고 천수답에 비 내리기만 기다릴 것인가. 국가개조 또한 국민의식과 행동의 변화 없이는 헛된 구호에 그친다. 그런 걱정이 연초부터 머리를 헝큰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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