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욱 기자

등록 : 2016.06.10 04:40
수정 : 2016.06.10 04:40

몰락한 노키아가 씨 뿌린 스타트업… 경제 재도약 희망 ‘활짝’

<창간 기획> 산업개혁: 미래를 열다, 동행을 꿈꾸다 <2>성공 열쇠는 산업생태계

등록 : 2016.06.10 04:40
수정 : 2016.06.10 04:40

지난달 27일 오후 핀란드 헬싱키의 외곽도시인 에스포(Espoo)시에 위치한 알토대학 내 ‘스타트업 사우나’에서 스타트업 창업 희망자들과 투자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알토대학 학생들은 창업 양성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헬싱키=남상욱 기자

지난달 28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자동차로 2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에스포(Espoo) 시.

핀란드의 상징 노키아의 본사가 있는 곳이자, 핀란드 스타트업(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신생기업)의 요람 알토대학이 위치한 곳이다.

노키아 본사에서 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알토대학 교정은 활기가 넘쳤다. 이날은 마침 알토대 학생들이 내놓은 각종 아이디어 상품에 대한 투자 설명회가 있었다. 강의 도중 질문을 하려는 학생에게 전해주기 위해 배구공 모양으로 만든 이동식 마이크가 바로 이 학교 학생이 개발해 상용화한 제품이다. 어둠이 무섭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도록 한 램프가 부착된 인형도 이 곳이 고향이다. 설명회는 상품화가 예정된 신상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열기가 넘쳤다.

투자 설명회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이 곳 학생들은 물론이고 요즘 핀란드 젊은이들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슈퍼셀(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핀란드 대형 모바일 게임사)이나 루비오(앵그리버드 제작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만 목매고 살았던 청년들이 이제는 창업에 도전하고 자신이 스스로 만든 꿈을 이루기 위해 뛴다는 말이었다.

공룡의 자리를 대신한 당찬 꼬마들

에스포는 핀란드 경제의 번영과 짧은 쇠락, 그리고 지금의 재도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핀란드와의 동의어라고까지 불렸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2008년 쇠퇴하면서 핀란드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라 전체 법인세의 23%를 담당하던 노키아는 마침내 2013년 휴대폰 사업 부문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넘기며 전성기를 마감했다.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핀란드 경제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2012~2014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스타트업이었다. 핀란드 경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헬싱키와 에스포 이곳 저곳에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이 창업한 업체 사무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헬싱키 도심에서 가방을 맨 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청년 사업가를 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오픈소스(공개) 소트프웨어 업체인 콘테나(KONTENA)를 작년에 창업한 미스카 카이피아이넨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IT 관련 대기업에 다니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지금은 회사를 그만 두고 업체를 세웠다”고 말했다. 콘테나와 같은 스타트업은 한 해에 500~700곳이 생겨난다. 핀란드 비즈니스 엔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핀란드 스타트업에서 유치한 투자금은 전년보다 4억7,000만유로가 증가한 25억3,000만유로, 우리 돈으로 3조3,000억원 가량에 달했다.

적재적소 지원 나선 핀란드 정부

핀란드의 스타트업 성장은 민간의 창의적 시도와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더해진 결과다. 창업 열기가 민간에서 시작되자, 이를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정부가 맡았다. 아이러니하지만 민간에서의 시작은 노키아에서 밀려나온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노키아는 2011년부터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인력에 대해 1인당 2만 유로의 지원금을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스타트업 포함 중소기업만 해도 1,000개가 넘었다.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해 최근 쿠올(Kuoll)을 창업한 드미트리 카이고로도프씨는 “정부의 실업수당 등 사회안전망이 탄탄해 창업에 대한 실패의 두려움이 적은 것도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핀란드 정부에 따르면 기술혁신투자청(TEKES·테케스)을 통해 지난해 스타트업 창업에 들어간 정부 지원금은 1억4,000만유로(약 1,851억원), 2008년 6,000만유로(약 793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액수다.

테케스는 여전히 창업한 지 2년 이내의 스타트업에 단계별로 창업과 기술개발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지원해주고 있다. “스타트업 육성이 핀란드 산업구조조정의 한 축이 될 것”이라는 게 핀란드 정부의 생각이다. 최근에는 핀란드 정부가 보유한 기업 지분을 매각해, 그 비용을 스타트업의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을 정도로, 스타트업에 국운을 걸고 있다.

노키아 없이도 희망을 말하다

물론 스타트업의 열풍이 노키아의 붕괴에 따른 여파를 어느 정도나 진정시킬지, 완전히 새로운 산업재편의 그림을 그려낼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앵그리버드로 성공한 루비오도 전체 직원이 1,000명 남짓에 불과하다. 직원이 최고 13만명에 달했던 노키아를 이들 스타트업이 단시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핀란드인들은 몇 년 전과 달리 희망을 얘기한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는 기업인 출신의 유하 시필라 현 총리가 이끄는 중도당이 49석을 얻어, 기존 집권당인 국민연합당을 제치고 제1당으로 올라섰다. “기업인 출신은 다를 것”이라는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투표로 나타났다.

기대대로 시필라 총리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2019년까지 전체 임금의 5%를 인하하는 임금 개혁안을 내놓았고, 경제전반에 걸친 산업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더불어 실업보험의 수혜 기간을 500일에서 400일로 축소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면서 사회복지 시스템을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정은주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은 “지금 핀란드 경제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인 건 맞지만 산에 큰 불이 나고, 황폐해진 숲을 다시 가꾸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며 “새로 심은 나무들(스타트업)들이 다시 거목(노키아)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가꾸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노키아의 붕괴는 핀란드의 비극이었지만, 지금처럼 새로운 산업생태계에서 출현한 강소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간다면 오히려 더 건강한 산업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헬싱키=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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