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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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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영동 대공분실

입력
2018.01.03 15:4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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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현장인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실제 모습 그대로다. 박처원 치안감이 요원들을 모아놓고 훈시하는 장면은 본관 앞이고, 그가 박종철 화장 허가를 기다리며 운동하던 곳은 테니스장, 최환 검사와 부검실시를 놓고 다투던 장소는 별관 뒤편이다. ‘남산 안기부’와 ‘보안사 서빙고호텔’ 등 독재정권 시절의 고문시설 가운데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군사정권 시대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정권의 주문에 충실하게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 1987년 1월 하숙집에서 연행된 박종철은 승합차에 실려 대공분실의 육중한 철문을 통과했다. (지금은 문이 바뀌었지만 아직 옆에 남아 있다.) 끌려온 사람들은 “철문을 여닫을 때 탱크가 굴러가는 듯한 굉음에 큰 공포를 느꼈다”고 증언했다. 정문을 지난 피의자들은 건물 뒤쪽의 쪽문으로 끌려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선형 철제 계단이 취조실인 5층까지 연결돼 있다. 눈이 가려지고 손이 포박된 피의자들은 위치감각을 상실하고 공포에 질린다. 이윽고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509호실. (동선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

▦ 한 평 남짓한 조사실에는 고정된 침대와 욕조 등이 물고문하기 적합하게 배치돼 있다. 채광 억제와 탈출방지 목적으로 창문 폭은 기형적으로 좁고, 전구는 조명의 색까지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 벽은 소리를 흡수하는 흡음제가 아닌 목재 타공판으로 마감했다. 저음은 흡수하되 비명 같은 고음은 옆방으로 전달해 공포를 주려는 의도다. 515호실에서 고문을 받았던 고 김근태는 “멱이 따진, 흐느껴 대는 울려 퍼짐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편을 보지 못하게 문을 엇갈리게 배치한 16개의 조사실, 안에선 열수 없게 한 손잡이, 자해 방지를 위한 둥근 책상 모서리 등. 건물 전체가 고문의 흔적이 밴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현판을 바꿔 단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자는 국민청원 운동이 시작됐다. 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과 5층 조사실 등만 제한 공개하고 있으나 건물 전체를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요구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추악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온전히 보전되고 기억돼야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ii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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