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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사정이 있겠지요”

입력
2015.01.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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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억해야 할 ‘대구 돈벼락 사건’

시민들 배려하는 마음에 훈훈한 결말

국가적 걱정거리들에 대한 해법 제시

직업이 기자이다 보니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일’도 많다. 세금과 복지 문제가 그렇고, 지도자의 소통과 국민의 욕구가 그렇다. 하지만 해법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마음 속에서 찾아 꺼내야 하고, 주변에서 발견해 기억하고 새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1월 2일자에 칼럼에서 ‘배려하는 마음’이란 제목으로 새해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지난 16일자엔 ‘하늘에서 온 편지’ 제목으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하소연을 진심으로 안아 주었던 어느 시민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걱정해야 할 일’보다 기억하여 마음에 품어야 할 사연이 더욱 소중하다. 이른바 ‘대구 돈벼락 사건’도 그렇다. ‘하늘에서 온 편지’처럼 좋은 이야기들은 왜 제대로 널리 알려지지 않는지 답답하다.

이 사연에 등장하는 평범한 인물들을 주목한다. 할아버지, 청년, 경찰관, 시민1, 시민2(복수의 인물)가 그들이다.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결코 넉넉하지 않은 어르신으로 짐작된다. 동네를 돌며 고철 종이박스 등을 수집하며 몇100원, 몇1,000원씩 모았던 모양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청년 손주가 안타까워 그렇게 모은 돈 800만원을 5만원권으로 챙겨 건네주었다.

가난에 익숙했던 청년에게 800만원은 두려운 존재였던 모양이다. 지난달 29일 대구 시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돈이 무섭다”는 생각으로 하늘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5만원권 지폐 160장은 대낮 길거리에 뿌려졌고, 2~3분 만에 한 장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주변은 교통이 마비되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청년을 연행했고, 상황을 파악하고 사연을 알게 됐다. 다음날 대구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글이 올랐다. “…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라 평생 고물 수집을 하신 할아버지가 아픈 손주에게 물려준 귀한 돈입니다. 사정을 모르고 돈을 습득하신 분은 경찰서로 연락하여 주인에게 돌려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돈을 뿌린 청년은 처벌할 수 없고, 대낮 노상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돈’을 가져간 시민도 처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튿날부터 시민들이 경찰을 찾아왔다. 30대 남성은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며 100만원을 놓고 갔고, 이어 40대 여성이 15만원을 돌려주었다. 다음날 20대 후반 시민은 주운 돈이라며 10장을 가져왔고, 그 다음날엔 60대 여성이 5만원권 1장을 반환했다. 그 이튿날에는 60대 남성이 30만원을 가져왔다. 그렇게 모인 돈은 5만원권 57장, 285만원이었다. 30대 남성, 60대 여성 등은 경찰서 접수창구에 남겨진 ‘시민2’의 인적 사항이었다. 이후 나머지 515만원을 찾자는 목소리들이 인터넷에 번졌다.

그제 새롭게 시민1의 사연이 알려졌다. 시내 한 신문사 편집국 입구에서 한 50대 남성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들어가서 보시라”며 봉투 하나를 전달했다. 들어가서 보았더니 봉투 속에는 5만원권 100장과 메모가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 주세요.” 메모는 2009년도 다이어리 한 장에 정성스레 씌어 있었다. 6년 전 다이어리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50대 남성의 검소하고 건실한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시민1 역시 어렵게 살아가는 그 할아버지며, 마음 여린 그 청년이며, 가슴 따뜻한 그 경찰이며, 양심에 충실한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한때 ‘돌아오지 못한 돈’에 대해 약간의 의분을 토로했던 사람들은 “사정이 있겠지요”라는 마음에 머리를 숙였다. 고물수집을 하며 돈을 모았던 할아버지의 입장을 배려한 데 그치지 않고, 그 돈을 주워갔던 시민들의 마음과 사정까지 헤아린 그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갖는다. 지난번 소개했던 ‘하늘에서 온 편지’의 발신자, 이번 ‘대구 돈벼락 사건’을 마무리한 시민1과 같은 분들은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이들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면 나라의 걱정거리라 할지라도 해법이 없을 수 없다.

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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