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뒤끝뉴스]자금 은닉 ‘최유정’ 꼬리 잡은 대학생들

입력
2017.04.08 04:40
0 0

대학생 5명, 사물함 정리하다

쇠톱으로 열쇠 잘라 2억 신고

수사 나선 경찰, CCTV 등 분석

은닉 교수 인터넷에 부부 ‘흔적’

유실물 됐다면… 학교ㆍ학생 몫

“신고보상금 50만원 지급 계획”

지난달 7일 경기 수원의 한 대학 학생사물함에서 발견된 돈 봉투. 수원중부경찰서 제공
지난달 7일 경기 수원의 한 대학 학생사물함에서 발견된 돈 봉투. 수원중부경찰서 제공

“무슨 돈일까? 시나리오 좀 내봐”(A총경)

“거액인데다 달러까지 있는 걸 보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돈일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요.”(B경정)

“외부인일까? 그 큰 돈을 학생들이 숨겨둘 리 없잖아?”

“무언가에 쫓겨서 급히 빼돌린 돈 아닐까요? 내부 구조를 잘 아는 교수 소행일수도 있고요.”

“교수가?...”

지난달 7일 경기 수원의 한 대학교 학생사물함에서 한화와 미화 등 2억 원 상당의 뭉칫돈이 발견된 직후 경찰은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했습니다. 2월 중순 김정남 암살 사건이 알려지고, 범행에 가담한 한 여성이 국내 머물다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테러 또는 대남공작과 관련된 자금이라는 설이 나도는 등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해당 사물함을 직접 비추는 폐쇄회로(CC)TV가 없어 진땀을 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 복도를 비추는 CCTV가 얼굴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고화질이고 메모리엔 이전 121일간의 영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기기를 통째로 들고 온 경찰은 화면을 4개 분량으로 나눠 확인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경찰서 형사과 인력이 대부분 동원돼 영상을 돌려보기를 며칠, 드디어 수상한 한 인물이 포착됐습니다. 지난 2월16일 오후 찍힌 영상에 학생사물함이 위치한 곳에 한 남성이 가방을 들고 서성거리는 모습을 확인된 것입니다. 사물함이 놓인 구역은 교수연구실이 없을 뿐 더러, 사물함을 둔 학생이 아니고서는 드나들 이유를 찾기 어려운 그런 폐쇄적 공간이었습니다. ‘매의 눈’을 가진 형사들의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경찰은 곧 이 남성의 동선을 추적했습니다. 교내 다른 CCTV와 연계해 살폈더니, 그는 한 교수연구실로 들어갔습니다. 지난 4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된 A교수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A교수를 바로 불러 취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사물함에 돈을 넣었다는 직접적인 단서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엔 A교수의 서울 서초동 집부터 대학까지의 출퇴근길 등 과거 행적을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A교수는 자신의 차량으로 과천~봉담간고속화도로를 이용하면 학교까지 최단거리로 출퇴근할 수 있음에도 1주일에 1,2차례는 꼭 1~2시간씩 의왕으로 우회했습니다. 서울구치소를 오간 것이지요. 수상히 여긴 경찰이 서울구치소 면회기록을 조회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A교수가 100억 원대 수임료를 받아 구속기소된 최유정(47) 변호사를 ‘남편’ 신분으로 수시 접견한 것이었습니다. 법적으론 지난해 갈라섰지만, 옛정으로 옥바라지를 한 것이었죠. 그가 최 변호사와 부부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이뿐 아니었습니다. 외국계 회사가 운영하는 포털사이트에 A교수와 최 변호사의 이름 등을 넣어 동시 검색했더니 2008년쯤 온 가족이 미국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게시 글 등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확신이 든 경찰은 A교수의 계좌추적에 나섰고, 지난 4일 오후에는 A교수의 자택과 연구실을 압수수색한 뒤 그를 참고인으로 불러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한 달여 만에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최유정 변호사와 A교수가 부부 사이였음을 확증케 해준 미국의 한인교회 사이트. 인터넷 캡처
최유정 변호사와 A교수가 부부 사이였음을 확증케 해준 미국의 한인교회 사이트. 인터넷 캡처

조사결과 A교수는 지난해 5월쯤 부당 수임 사건으로 최 변호사가 체포되기 직전 그녀의 대여금고 열쇠를 건네 받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대여금고 안에 있던 15억 원을 맡아달라 부탁하자 이 돈을 자신의 대여금고로 옮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대여금고에는 13억 원밖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머지 2억 원을 소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잠깐 연구실에 감춰두기도 했으나 지난 1월 최 변호사의 1심(징역 6년ㆍ추징금 45억원) 선고 뒤 수사기관이 언제 어느 때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내 사물함에 숨긴 것이고요.

A교수는 경찰에서 “(돈을)가까운 곳에 두고 관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 때만해도 학생들이 그 사물함을 강제 개방할지는 몰랐겠지요. 최초 신고자인 이 대학교 단과대 학생회 소속 5명은 해당 사물함이 오랫동안 잠겨 있어 일정 기간 공지를 했는데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쇠톱까지 동원해 열쇠를 잘랐다고 합니다. A교수는 이런 소식도 접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엔 인쇄물을 오프라인 게시판에 붙이는 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휴대폰 문자서비스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지를 한다고 하네요.

경찰은 최 변호사 돈으로 확인된 2억 원을 범죄수익금으로 보고 몰수하기로 했습니다. 범죄수익금이 더 있는지도 살피고 있지만, 추가로 나온 것은 아직 없다고 하고요.

그나저나 경찰의 용의주도한 작전을 학생들은 반기지 않았을 거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옵니다. 주인을 찾지 못해 단순 유실물로 결론 났다면, 습득자인 학교와 학생들이 세금 22%를 뗀 나머지의 절반씩을 갖게 됐을 테니까요.

경찰은 ‘대박의 꿈’에 부풀었을 학생들에게 많지는 않지만 신고보상금을 주기로 했답니다. 얼마냐 구요? A교수의 처벌 수위 등을 기준으로 10만원에 불과하나 학생 5명이 고르게 나눌 수 있도록 40만원을 더 보태 50만원을 건넬 예정이라고 하네요. 유실물이 됐을 때 학생들 몫의 0.006% 수준인데, 한편으론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생들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최 변호사가 기막힌(?) 타이밍에 빼돌린 구린 돈을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