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남북관계 복원할 골든타임, 8·15 행사까지 두 달 남았다"

입력
2015.06.15 04:40
0 0

6·15 공동선언의 의미는 평화·자주적 통일 원칙에 합의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겨, 교류협력 통해 통일 물꼬 도모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은 5·24 조치 즉각 해제 안 해 실기

특사 파견 등 교류 확대해야… 북한과 경제협력 안 하면 손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을 맞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6·15선언과 1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인 임 전 장관은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걱정하며 인터뷰 내내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을 맞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6·15선언과 1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인 임 전 장관은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걱정하며 인터뷰 내내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박근혜정부 3년차, 남북관계는 “되는 것도, 그렇다고 딱히 안 되는 것도 없는”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 사이 깊어진 불신의 골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돌파구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고인이 된 남북한 최고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만나 두 손을 맞잡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던 2000년 6ㆍ15 공동선언도 잊혀진 지 오래다. 올해는 특히 7년 만에 추진됐던 6ㆍ15 남북 공동행사가 끝내 무산됐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 탓에 매년 진행해오던 기념식마저 취소되면서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6ㆍ15가 지나가고 있다.

답답한 남북관계를 진척시킬 묘책은 없는 것인지, 6ㆍ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해법을 물었다. 12일 영등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A4 용지 3장에 달하는 답변서를 미리 준비할 만큼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임 전 장관은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말만 있고, 실천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8ㆍ15 광복 70주년 행사까지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남북관계를 복원할 ‘골든타임’이 이제 두 달 남았다는 얘기다.

_6ㆍ15 공동선언 이후 15년이 흘렀지만 남북관계는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심정이 어떤가.

“지난 7년 동안 6ㆍ15가 밝혀준 평화와 화해의 프로세스가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15주년을 맞게 돼 대단히 착잡하다. 그나마 기대했던 6ㆍ15 남북공동행사도 무산돼 매우 유감스럽다.”

_6ㆍ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요약한다면.

“우선 평화 통일의 길을 밝혀줬다. 정상회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됐던 게 통일이었다. 평화적, 자주적 통일의 원칙을 세웠고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프로세스)’이라는 데 합의를 봤다. 당장 정치적 통일은 힘들더라도 교류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또 과거 회담이 형식상 합의에만 그쳤던 데 반해, 6ㆍ15 선언은 합의한 내용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민족의 운명을 미국이나 중국 등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가 됐다.”

_박근혜정부는 대북정책 기조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웠다. 어떻게 평가하나.

“남북문제를 25년 간 다뤄왔지만, 제일 큰 걸림돌이 불신이다. 그런 점에서 신뢰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신뢰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방법론에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일단 순서가 잘못 됐다. 북측이 먼저 신뢰를 보여주면, 그제서야 우리도 신뢰할 수 있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접근 방식으론 아무것도 이뤄질 수가 없다.”

_우리 정부는 민간 교류 활성화를 통해 신뢰 구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이 응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6ㆍ15 공동선언 4항을 보면 경제협력을 비롯해 사회 문화 체육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 실천을 통해서 신뢰를 ‘다져나가자’고 돼 있다. 민간의 남북왕래와 교류 협력을 우선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교류협력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선 신뢰 조성이 불가능하다. 신뢰는 두 정상이 만나 오늘부터 도장 찍고 ‘신뢰합시다’ 한다고 해서도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말이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할지 모르지만, 인도적 지원을 할 때도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_교류협력도 결국에는 천안함 폭침 후 대북 제재를 가한 5ㆍ24 조치에 발목 잡혀 한계가 있지 않나. 5ㆍ24 조치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박근혜정부 들어서자마자 즉각 해제했어야 하는데 실기(失期)했다. 지금 상황에선 5ㆍ24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절대 말 못한다.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원칙은 딱 하나다. 명분보다 실리만 생각하자. 우리 경제가 진출할 곳은 북한 밖에 없다. 못하면 우리만 엄청난 손해를 본다. 해제라는 말을 굳이 쓰지 말고, 5ㆍ24로 중단됐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민간 차원의 남북 왕래와 교류협력을 보다 폭 넓게 허용하고, 교역도 시작하면 된다. 무엇보다 금강산관광은 5ㆍ24 조치와 상관없다.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면서 이산가족 상봉도 같이 추진하면 된다. 얼마든지 길은 있다.”

_특사 파견의 필요성은 어떻게 보나. 우리 정부는 비공식 접촉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뒷거래는 안 한다고 투명성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외교의 ABC도 모르는 답답한 소리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외교적 성과는 비밀 외교로 시작됐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 키신저의 비밀외교가 미중관계 정상화와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비밀 협상을 통해 먼저 의사소통을 하고 그 다음에 공개외교로 가는 것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투명성을 강조하며 공개 회담만 고집하면 이 역시 아무것도 못한다.”

_만약 현 정부에서 요청이 온다면 특사로 나설 의향이 있나.

“특사는 아무나 해선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의지와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상대방도 믿고 받을 수 있다. 특사 자격으로 왔다면 (북한에서) 환영 안 할 것 같은데.(웃음)”

_우리 정부는 지난 해 말 ‘모든 의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대화 제의를 했지만 북한의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추가적인 대화 제의가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화 제의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본인의 자신감과 인내심이다. 김대중정부 역시 남북관계가 파탄 난 상황에서 정권을 잡았고 초기엔 남북대화라는 게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관성 있게 ‘선민후관, 선경후정’의 원칙을 고수하며 밀어 붙였다. 그간 정부가 통제하던 민간 활동을 완전히 풀어주고(선민후관), 경제가 먼저, 정치는 뒤로(선경후정)하는 정책 방향을 고수했다. 우리 때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앞장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갔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그리고 끝내 정상회담도 다리를 놔준 것이다. 민간과 경제를 일관되게, 전폭적으로 앞세우면 돌파구가 나온다”

_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할 마음이 있다고 판단하나.

“확고한 의지가 있으면 방법은 있기 마련인데, 말만 있고 실천이 보이지 않는다.”

_북한은 왜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보나.

“지난해 북한은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신년사도 그랬고, 북한이 주도해 고위급 회담도 열리지 않았나. 10월에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때 북한의 넘버2,3,4 인사들이 폐막식을 빙자해 온 것도 하나의 시그널이었다. 하지만 이후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파탄나게 된 직접적 원인이었다. 우리는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북한에선 최고 지도자를 비방하는 내용을 결코 수용하기 힘들다.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고 강조하지만 남북관계보다 더 중요한 가치인지는 전략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_최근 국정원의 현영철 숙청 발표와 대통령에 연이은 ‘공포정치’언급에 대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서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너희는 틀렸다, 부숴야 한다’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호를 사용해서 1991년 최초로 합의한 문서인 남북기본합의서 1조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정간섭 및 비방중상을 하지 않기로 돼 있다. 최초 합의를 지켜야 한다. 이걸 안 지킬 때 남북관계는 항상 경색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_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집권 3년차인데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 같다. 인민경제 생활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건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일단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_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 구상에 대한 평가한다면.

“국민들에게 잊혀져 갔던 통일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일깨워준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통일은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 온다고 놓고, 그때를 위해 대비하자는 데만 치중해 있다.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면 통일 이후 상황에 대비하는 준비 못지 않게‘현재진행형’으로 통일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통일은 10%, 20%, 60% 이렇게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통일을 탐탁지 않아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통일은 힘들다. 따라서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과 대만을 봐라. 비행기가 1주에 850편이 오가고 900만 명이 왕래한다. 양안 간 결혼도 37만건이 넘고, 우편 전화 송금 등이 자유롭다. 중국엔 대만 어린이들을 위한 소학교까지 있다. 통일을 이루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통일 상황인 것이다.”

_6ㆍ15 공동선언의 산물인 개성공단의 발전 방안은.

“개성공단은 정말 옥동자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지 않나. 경제적 이득이 서로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100만평 대지를 조성해놨는데 현재 40만평 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나머지 60만평은 가로등도 다 세워 놨는데 텅텅 비어져 있다. 당국이 지어주기로 합의한 노동자 숙소도 지어지지 않았다. 지금 있는 개성공단부터 다 채우고, 나머지 북한 지역에도 제2의, 제3의 개성공단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상호 의존성이 생겨 남북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된다. 독일 사람들도 개성공단 보고 ‘한반도 통일의 현장’이라고 하지 않나.”

_남북관계 골든 타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나.

“남북관계는 잘 나가다가도 깨지고, 깨졌다가 다시 살아나고 하는 것이다. 다만 8ㆍ15 광복 70주년 행사 무렵까지 박근혜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 끝날 때까지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본다. 앞으로 2년 반 남았는데 내년엔 총선 있고 대선도 치러야 하지 않나. 현실적으로 이제 두 달 남았다. 그 사이 기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