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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노동 거부로 부당해고 해도... 고용주 말만 듣는 고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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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노동 거부로 부당해고 해도... 고용주 말만 듣는 고용부

입력
2018.02.20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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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 분야 특례업종으로 규정

휴일 등 제한 없어 횡포에 무방비

고용허가제 적용 국적 노동자들

5번까지만 사업장 옮길 수 있어

고용주 ‘보복성 해고’도 빈번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의 외국인노동자들의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김이찬 대표가 두 명의 캄보디아 여성을 상담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기 위해 캄보디아어를 배웠다. 정준호 기자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의 외국인노동자들의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김이찬 대표가 두 명의 캄보디아 여성을 상담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기 위해 캄보디아어를 배웠다. 정준호 기자

농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비 노동’에 내몰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농ㆍ어업 분야가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주당 최대 68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휴일ㆍ휴게ㆍ연장근로 제한이 없다. 많이 일한 만큼 비례해 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언어ㆍ행정 장벽 때문에 농장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구조이다. 여기에 고용허가제는 농장주 등에게 칼자루를 쥐여주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종속 상태에서 초과노동, 임금체불, 인권유린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곤 한다.

고용허가제는 베트남을 포함한 16개 국적 노동자들에게 최장 체류 기간 4년10개월 동안 다섯 번까지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한다. 사업장 이동은 사용자의 허락이 있거나 휴업ㆍ폐업, 근로조건 위반 등의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용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질병 등으로 근로가 부적합한 경우, 사용자 승인을 안 받고 5일 이상 결근하거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합의에 의한 종료, 기타 해고사유발생에 의한 해지)에 고용계약 종료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고 사유 등은 내국인 근로자와 다르지 않고 차별을 두지 않는다”라며 “부당해고가 발생하고 내국인과 똑 같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또한 전국 고용센터에서 평균 5개 국가 언어의 통역서비스를 하고, 외국인력상담센터(콜센터)를 통해서 전화 통역도 하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행정 장벽은 높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이주민지원센터 ‘친구’의 조영관 사무국장은 “고용주는 고용계약 종료에 대한 사유 등을 임의로 적어 내는데 고용노동부는 해당 노동자에게 직접 확인하거나 공지하는 절차도 없이 그대로 처리한다”라며 “기본적으로 노동 비자 소유권을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가 가진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고용주의 신고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퇴직금을 주기 싫거나, 부당한 잔업을 거부한다는 이유 등으로 보복성 해고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심지어 일을 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용 관계가 종료됐다고 신고한 경우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A씨의 경우, 농장주가 자기 농장에 일이 없을 때 월급을 못 주니까 사장 친구 농장에 가서 일하라고 해서 그 말을 따랐다. 그렇게 1, 2개월 다른 농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니, 농장주는 “너는 고용 해지했다, 고용센터 가서 알아보라”고 전했다. 고용센터에 알아보니 이미 한 달 반 전에 고용 해지된 상태였다. 근로계약 종료 후 한 달 내 다른 사업장으로 변경 신청을 하지 않으면 출국해야 하는데, A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근로계약이 종료돼 낭패를 당했다.

행정절차가 너무 느려 고통 받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B씨는 경기 지역의 한 고용센터에 사업주가 자신을 쫓아 내놓고 임의 이탈(정당한 절차 없이 5일 이상 무단결근 등) 신고를 했는데 이 신고가 잘못됐다는 걸 확인하는 데 4개월이 걸렸다고 전했다.

농업ㆍ축산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지난 12일 최소 주거 기준을 설정하고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장에는 신규 인력을 배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고용주는 외국인 노동자를 초청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산업재해를 은폐한 사업장에는 신규 근로 인력 배정 시 감점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런 사항을 원활히 신고할 수 있고, 행정당국이 근로감독관 등을 늘려 지체 없이 대응에 나서는 환경이 우선돼야 정부의 대책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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