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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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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예술이다

입력
2015.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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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예술가들

데이비드 로텐버그 지음ㆍ정해원 이혜원 옮김

궁리 발행ㆍ500쪽ㆍ2만5,000원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존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종의 진화를 이룩한다는 자연선택설을 고안했고 이는 현대 진화론의 기본 원리가 됐다. 그러나 정작 다윈 자신은 “화려한 공작 꼬리를 볼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자연선택설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쓸모가 없는 화려한 꼬리깃털은 암컷을 향해 구애하는 데 쓰인다. 긴 사색 끝에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간한 지 12년 만에 낸 책 ‘인간의 유래’에서 암컷이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한다는 성선택설을 주장했다.

이후 자연과학자들은 성선택을 실용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다. 수컷이 아름다운 춤을 추고 깃털이 화려할수록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고, 암컷은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수컷을 선택해 종족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뉴저지공대 교수이자 음악가인 데이비드 로텐버그는 원래 성선택설이 자연선택설을 수정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라 강조한다. 즉 아름다움 자체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답기 때문에 배우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다윈의 성선택설을 ‘미자생존’, 아름다운 것이 살아남는다는 문장으로 요약한다.

미국의 설치미술작가 패트릭 도허티는 정자새의 둥지(위)를 흉내낸 작품 ‘딸기 구아바로 세운 야생 주거지’를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정자새의 둥지(정자)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궁리 제공
미국의 설치미술작가 패트릭 도허티는 정자새의 둥지(위)를 흉내낸 작품 ‘딸기 구아바로 세운 야생 주거지’를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정자새의 둥지(정자)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궁리 제공
미국의 설치미술작가 패트릭 도허티는 정자새의 둥지(위)를 흉내낸 작품 ‘딸기 구아바로 세운 야생 주거지’를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정자새의 둥지(정자)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궁리 제공
미국의 설치미술작가 패트릭 도허티는 정자새의 둥지(위)를 흉내낸 작품 ‘딸기 구아바로 세운 야생 주거지’를 만들면서 “어릴 적부터 정자새의 둥지(정자)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궁리 제공

예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자(亭子)를 만드는 정자새는 무수한 사례 중 하나다. 수컷 파란 정자새는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파란색 꽃, 파란색 깃털, 파란색 플라스틱 스푼으로 뒤덮인 둥지를 만든다. 파란 물건을 뺏기 위해 수컷들 사이 도둑질이 횡행한다. 왜 하필 파란색일까? 여기엔 아무런 합리적 설명이 없다. 아니, 아직 과학이 합리적 설명을 제공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프럼은 만물을 예술의 형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물의 진화과정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예술의 변화 역시 일종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술은 관찰의 대상과 주체, 공연과 감상 사이에서 감각적 평가를 통해 공진화(co-evolution)하며 발달한 하나의 대화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프럼은 “진화는 예술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새의 깃털이 일정한 규칙을 기준으로 다변화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있다. 궁리 제공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프럼은 “진화는 예술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새의 깃털이 일정한 규칙을 기준으로 다변화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있다. 궁리 제공

예술의 본질도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영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문화예술이 생물학의 부분집합이라고 선언한 것이 떠오른다. 저자는 “과학은 진보하지만, 더 나은 예술을 하기 위한 미의 척도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며 선을 긋는다. 그는 오히려 과학이 예술을 참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시인인 로알드 호프만이 “화학은 그림이 전부”라고 말했다. 화학은 분자구조를 그림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예술가들이 자연의 구조를 관찰하고 포착하는 데 앞서가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카오스 이론의 프랙탈 모형을 본다. 폴록은 자연 만물에 숨어있는 보편적 조형성을 추구했고 이를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폴록도 자신의 그림을 ‘구상미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물론 수학자들이 폴록의 그림에서 카오스 이론을 도출한 건 아니다. 다만 현실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놀라운 통찰력이 예술에 있음을 그의 그림은 보여준다.

예술은 흔히 합리적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이 이를 참조하면 보다 현실을 잘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술과 과학은 둘 다 자연을 해명하려는 수단이고, 자연의 본질인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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