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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증세 논의 어물쩍 넘길 게 아니다

입력
2017.06.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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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증세 논의 뒤로 미루는 정부

지출 확대 부를 정책 시동만 서둘러

짊어져야 할 부담 숨기면 국민 기만

경유값 인상을 둘러싸고 최근 작지 않은 소동이 빚어졌다. 한 신문이 정부의 경유값 인상 가능성을 보도했다. 세율 조정을 통해 휘발유값 대비 최대 125%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조치라는 배경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러자 서민 세부담만 늘리는 제2의 담뱃세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급기야 청와대가 직접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얘기”라며 진화에 나서야 했다.

화들짝 놀란 기획재정부는 더 나아갔다. 경유값은 물론이고, 면제자 축소를 위한 소득세 개편과 주세, 상속ㆍ증여세 등도 올해엔 일체 손을 대지 않겠다는 입장을 사실상 공식화 했다. 이어 지난 29일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까지 나서 증세 문제는 사실상 내년 이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증세설을 부인하고 나선 건 역설적으로 증세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 잠재적 저항심리가 그만큼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경유값 인상설은 일단 가라앉았지만, 증세와 관련해 국민은 지금 ‘자라 보고 놀한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상태다. 박근혜 정부 때 이미 뒤통수를 세게 맞은 탓이다. 박 전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금과옥조처럼 내세웠다. 그러더니 담뱃세와 소득세 감면제의 세액공제 전환으로 중산ㆍ서민층에게 증세 부담을 기습적으로 떠넘겼다. “증세가 아니다”는 서천 소도 웃을 억지소리로 국민을 우롱하기까지 했다. 전 정부에 기만당한 경험이 현 정부의 기만 가능성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형성한 셈이다.

따져 보면 이번 정부는 사실 국민을 기만할 이유도 별로 없다. 국민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이미 ‘큰 정부’와 ‘보편적 복지’를 지지했기 때문에 합당한 만큼의 증세는 감당해 내겠다는 각오가 서 있어야 맞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가 ‘합당한 증세’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민주당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201개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5년간 178조원이라고 보고 있다. 연 평균 35조6,000억원이다. 이 안에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청년 일자리 지원, 기초연금 인상 등 주요 사회ㆍ복지 공약 이행 비용 등이 포함된다.

당정은 이 중 5년간 112조원(연 평균 22조4,000억원)을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한 재정개혁으로 조달하고, 66조원(연 평균 13조2,000억원)은 세입개혁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엔 세입개혁, 곧 증세를 가급적 억제키로 하면서 내년 증세 수입분도 8조원으로 가장 적게 잡아놨다. 초과 세수 등 재정여건을 감안하고,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공약의 구조를 감안할 때 내년까지는 두드러진 증세 없이 버틸 수 있다는 결론을 낸 듯하다. 국정기획자문위가 민감한 세제변화는 내년 이후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집권 3년 차인 2019년부터 세입개혁에 따른 세수 추가분이 내년의 두 배에 육박하는 15조5,000억원으로 잡혔다. 그게 모두 증세를 통해 조달돼야 한다. 하지만 법인세나 소득세율 인상 등에 따른 실제 세수효과는 시행 다음 해에 발생하기 때문에, 2019년에 15조5,000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되려면 당장 올해에 그걸 채울만한 증세가 단행돼야 한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입을 모아 “금년엔 사실상 증세가 없다”며 증세 이슈를 눌러두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애써 증세 이슈를 눌러두려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섣불리 증세에 나섰다간 내년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이 ‘더 큰 정부’와 ‘더 넓은 보편적 복지’라면 그에 따른 조세 부담 등도 국민에게 제때 정확히 알리는 게 당당한 자세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 실상을 어물쩍 감추는 ‘꼼수’로 일단 시스템을 바꿔 놓고 보자는 식은 정당한 정치가 아닌, 또 다른 국민 기만이기 때문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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