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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말할 권리 위해 싸우겠다”던 볼테르의 말 사실일까

입력
2017.04.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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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은, 일상에 만연한 혐오표현이 혐오범죄를 낳은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은, 일상에 만연한 혐오표현이 혐오범죄를 낳은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당신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말입니다. ‘허튼 소리라 짜증나는데,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멋진 사람이니 그냥 들어는 드릴게’ 하는 쿨한 포즈를 취할 때 ‘짜잔~’ 등장하는 말입니다. 볼테르가 했다는 이 말은, 역사상 유명인물에 기대어 지나치게 극적으로 멋진 말들 대부분이 다 그러하듯, 실은 나중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잘 먹혀 드는 건,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겁니다.

법학자 제러미 월드론이 쓴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는 이렇게 인기 있는 ‘표현의 자유’에 맞서는 책입니다. 혐오표현(Hate Speech)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규정한 뒤 금지법을 만들어 형사처벌할 것을 주장합니다. 민사상 손해배상이 아니라, 형사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별도의 혐오표현금지법을 굳이 제정하는 건, 법 제정 그 자체가 “혐오표현은 형사적 처벌 대상”이라고 명확히 일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종ㆍ민족ㆍ성ㆍ연령ㆍ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 편견 어린 독설들을 마구 쏟아내는 ‘아무 말 대잔치’가 성대한 시대에 솔깃한 얘기입니다.

월드론의 주장은 그렇기에 시원합니다. 그래도 ‘표현의 자유’를 버릴 수 없다는 미국 자유주의 법철학의 대가인 로널드 드워킨의 주장을 두고 “소수자 집단의 개인과 가족들에게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모욕적인 공격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면서까지 인종적인 존재론에 관한 날 것 그대로의 토론을 펼칠 필요가 과연 있는가”라고 쏘아붙입니다. 인종ㆍ민족ㆍ성ㆍ연령 등에 따른 혐오표현 금지는 이제 상식적인 가치인데, 민주적 토론을 빙자해 밑바닥에서부터 이 가치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질문입니다.

논증도 흥미 있지만, 그보다 사실 책을 둘러싼 상황이 더 재미있습니다. 월드론은 영국 태생, 책 출간 시기는 2012년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 마무리 시점, ‘티파티’로 상징되는 극우의 막말 퍼레이드 등이 떠오를 겁니다. 극우세력의 막말이 표현의 자유인가, 의아했을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악몽 때문에 저마다 혐오표현금지법이 있는 유럽인의 시각에서는 기괴했을 법 합니다. 이 책을 쓴 것도 “미국 사람들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순간 논증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암담해서입니다. 법이 안 만들어진 걸 보면, 결국 저자의 주장은 미국 땅에서 패배했습니다. 그 이후는 다 아는 바입니다.

혐오표현에 대한 볼테르의 태도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실제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중상을 대단히 싫어하기에, 터키인들에게 우둔함을 뒤집어 씌우길 원치 않는다. 여성들에게 폭군이며, 예술의 적인 그들을 몹시 싫어하는 데도 말이다.” 나름 멋지긴 한데, 다 말해 놓고 굳이 그렇게까지 말 안하고 싶다라고 하는 건 또 뭘까요. 혐오표현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볼테르는 처벌 대상일까요, 아닐까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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