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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푸름이 빼곡해 찬란한 검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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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푸름이 빼곡해 찬란한 검은 빛

입력
2017.02.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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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0~30m는 될 듯한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숲, 상록수지만 외부에서 보면 검은 숲, 흑림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숲, 흑림이다. 스위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고지대로 그 옛날 도적질을 일삼는 무리들이 들끓던 어둠의 숲, 흑림이다.

프라이부르크와 티티제 사이를 운행하는 열차가 전나무와 독일가문비나무가 빼곡한 흑림을 달리고 있다. 검은 숲 뒤로 눈이 쌓여 하얀 나무가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티티제(독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프라이부르크와 티티제 사이를 운행하는 열차가 전나무와 독일가문비나무가 빼곡한 흑림을 달리고 있다. 검은 숲 뒤로 눈이 쌓여 하얀 나무가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티티제(독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독일 남부 흑림 고지대 호흐 슈바르츠발트 위치. 그래픽=송정근기자
독일 남부 흑림 고지대 호흐 슈바르츠발트 위치. 그래픽=송정근기자

평창과 닮았고, 평창과 다르다

흑림(黑林) 혹은 블랙포레스트(Black forest)는 독일어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를 그대로 옮긴 말이다. 작은 지역의 소규모 숲이 아니라 한국의 백두대간처럼 기다란 숲 줄기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서편에 위치한 흑림의 규모는 대략 남북으로 160㎞, 폭 50㎞에 이른다. 하이델베르크, 칼스루에, 프라이부르크 등의 도시가 그 언저리에 자리잡았고, 숲은 수많은 마을과 소규모 촌락을 품고 있다.

호흐 슈바르츠발트(Hoch Schwarzwald)는 흑림 중에서도 남부 고원지대를 일컫는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평지가 대부분인 독일에서 일찌감치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다. 힌터차르텐, 렌츠키르히-자이크, 슐루흐제, 장크트 블라지엔, 티티제 등 5개 구역을 아우르는 흑림고원(흑림)은 강원도 평창 면적의 약 1.4배에 달한다. 해발고도 700~1,500m, 눈 덮인 산정에 스키리조트가 자리한 점도 평창과 닮았다.

그러나 우뚝우뚝 솟아 접근이 쉽지 않은 백두대간 산악에 비하면 흑림의 산세는 완만하고 부드럽다. 평창의 산엔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지만, 흑림에는 침엽상록수인 전나무와 독일가문비나무가 산림의 70%를 뒤덮고 있다. 그래서 겨울 흑림은 하얀 눈에 덮여 어디로 눈길을 돌려도 전형적인 크리스마스트리가 빼곡하다. 낮 시간 따가운 볕에 잠깐 녹았던 눈은 수증기로 변했다가 밤사이 나뭇가지에 다시 얼어붙어 아침이면 하얗게 상고대 꽃을 피운다.

티티제의 새벽안개. 햇살 비친 상고대가 봄 꽃처럼 화사하다.
티티제의 새벽안개. 햇살 비친 상고대가 봄 꽃처럼 화사하다.
눈에 덮인 흑림의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눈에 덮인 흑림의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겨울철에는 흑림 고지대 어느 곳에서나 전형적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다.
겨울철에는 흑림 고지대 어느 곳에서나 전형적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다.
숲길로 난 스키트랙에서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시민들.
숲길로 난 스키트랙에서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시민들.
흑림 전체의 스키트랙은 약 700km에 달한다.
흑림 전체의 스키트랙은 약 700km에 달한다.
장비만 있다면 어디서나 스키와 썰매를 즐길 수 있다.
장비만 있다면 어디서나 스키와 썰매를 즐길 수 있다.
여름철 초지는 겨울철에 스노슈잉 놀이터로 바뀐다.
여름철 초지는 겨울철에 스노슈잉 놀이터로 바뀐다.
트레킹, 스키, 스노슈잉 등 겨울철 레저 시설 표지판.
트레킹, 스키, 스노슈잉 등 겨울철 레저 시설 표지판.

흑림 최고봉 펠트베르크(1,493m)는 중부유럽에서 알파인 스키가 시작된 곳이다. 1891년 프랑스인 필레(R. Pilet)가 2m나 쌓인 눈을 헤치고 산정에 올라 나무 널빤지와 긴 막대기를 이용해 내려온 것이 시초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최초로 스키장에 리프트가 설치됐고, 가장 오래된 스키강습학교도 보유하고 있다.

스키장 풍경이야 비슷하지만 슬로프는 한국과 비교해 붐비지 않은 모습이다.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도 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부럽다. 장비만 갖추면 흑림 어디서나 스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마을에서는 스키를 신은 채 줄에 매달려 언덕까지 오르는 간이 리프트가 설치돼 있고, 이곳에서 스키든 썰매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여름이면 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지가 겨울이면 새하얀 눈밭으로 변하고, 설피를 신고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을 걷는 스노슈잉(Snow shoeing) 놀이터가 된다. 특수장비로 곳곳에 두 줄의 스키 트랙을 닦아 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스키로 시골마을을 누비며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흑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나무가 빽빽한 숲길로 이동하는 크로스컨트리. 여름에 산책과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숲길이 겨울에는 천연스키장으로 변신한다. 흑림에는 이렇게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리프트가 60여곳, 크로스컨트리를 즐길 수 있는 스키 트랙은 700㎞에 달한다.

뻐꾸기시계ㆍ맥주에도 가문비나무 열매

흑림 여행의 중심지는 티티제. 프라이부르크에서 기차나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다. ‘제(see)’는 독일어로 호수, 티티제는 산중에 형성된 호수이자 지명이다. 여름에는 수영과 뱃놀이, 윈드서핑 등을 즐기는 곳이지만 겨울에는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쌓여 그대로 산책길이 된다.

눈 덮인 흑림지역 멘첸슈반트 마을.
눈 덮인 흑림지역 멘첸슈반트 마을.
뻐꾸기시계 쇼핑센터. 외벽도 실제 작동하는 시계로 장식했다.
뻐꾸기시계 쇼핑센터. 외벽도 실제 작동하는 시계로 장식했다.
숲 속의 다양한 일상을 조각으로 장식한 뻐꾸기시계
숲 속의 다양한 일상을 조각으로 장식한 뻐꾸기시계
그림 14 호프굿스터넨 마을의 유리공예 시연.
그림 14 호프굿스터넨 마을의 유리공예 시연.
해발 1,000m 고지에 위치한 로트하우스 맥주 본사.
해발 1,000m 고지에 위치한 로트하우스 맥주 본사.
그림 17 맥주 라벨은 전통복장의 여인과 독일가문비나무열매.
그림 17 맥주 라벨은 전통복장의 여인과 독일가문비나무열매.

흑림은 뻐꾸기시계의 고향이다. 이 지역의 식당 어디를 가나 벽에 뻐꾸기시계 하나 둘은 기본이다. 사냥꾼에게 뻐꾸기는 사실 얄미운 존재로 인식됐다. 사냥꾼이 나타나면 숲 속의 짐승들에게 특유의 울음소리로 경고를 해 도망치게 하는데, 시간을 알리는 소중한 존재로 거듭난 것이 아이러니하다. 흑림에서 알레마넨호프 호텔을 운영하는 드루바(Drubba)라는 업체가 티티제와 호프굿스터넨 2곳에서 뻐꾸기시계 쇼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뻐꾸기 소리만 나는 초기 시계부터 다양한 움직임과 장식을 더한 것까지 뻐꾸기시계의 변천사도 전시했다. 오르골 연주에 맞춰 춤추는 회전 인형은 기본적인 장식이고, 게으름 피우다가 마누라에게 매질 당하는 남편, 맥주를 들이키는 농부, 톱질하는 나무꾼 등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한 갖가지 조각장식이 흥미롭다. 늘어진 시계 추는 흑림의 명물 독일가문비나무 열매 모양을 본떴다.

프라이부르크에서 흑림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중세시대 여각(旅閣)과 마방(馬房)이 있던 호프굿스터넨 마을엔 유리공예가 유명하다. 화려한 색상과 자연물을 담은 유리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 한 편에 따로 시연장을 만들어 놓았다. 불에 달구고 입으로 불기를 거듭해 유리막대가 약 15분만에 멋진 공예품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 이상으로 독일에서는 지역 맥주를 마셔봐야 한다. 흑림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트하우스(Rothaus) 맥주. 독일의 식사에서 빠지지 않는 소시지와 감자는 한국인 입맛에 맥주 안주로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한겨울에도 음료는 꼭 맥주를 시키게 되는데, 이 지역의 식당에서는 묻지도 않고 로트하우스를 내온다. 해발 1,000m 고지에 위치한 로트하우스 본사는 흑림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물은 흑림에서 자연 정화된 맑은 물이라 자랑한다. 지역 전통복장을 한 여인이 양손에 맥주를 그득 담은 커다란 잔을 들고 웃는 모습의 맥주병 라벨 배경도 흑림이다. 여인 양편에는 아래로 씨방을 늘어뜨린 독일가문비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공장과 함께 운영하는 기념품 판매점에서는 시중에서 2유로 하는 맥주를 반값에 살 수 있고,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5가지 제품을 무료로 시음할 수도 있다. 맥주와 관련된 제품뿐만 아니라 ‘로트하우스’마크가 들어간 티셔츠와 쿠션 등 제품이 다양해 유명 축구클럽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흑림 여행의 핵심 레드인클루시브 카드

흑림 곳곳에 흩어진 다양한 시설들을 입맛에 맞게 선택해 즐기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런 불편을 한번에 해결해줄 시스템으로 지역의 숙소와 연계한 ‘레드 인클루시브 카드’(레드카드)는 공급자나 여행자 입장에서 두루 편리한 제도다.

흑림지역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레드 인클루시브 카드
흑림지역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레드 인클루시브 카드

이 카드 하나면 흑림지역의 100여개 레저 시설을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펠트베르크 스키리프트를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고, 티티제의 바데파라다이스에서 1시간 30분간 무료로 스파를 즐길 수도 있다. 여름철에는 골프와 숲 체험학교 프로그램, 전기자전거 무료 이용 등이 포함돼 있다. 흑림지역의 자연경관을 즐기고 싶으면 하루 3시간에 한해 BMW i3 전기자동차로 곳곳을 드라이브할 수도 있다. 레드카드는 따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 370개 숙소에서 2일 이상 숙박하는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일종의 흑림지역 관광 진흥을 위한 시스템이다.

흑림의 중심지 티티제까지는 프라이부르크에서 30분, 슈투트가르트와 스위스 취리히에서 1시간 30분이 걸린다. 프라이부르크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고속열차(ICE)로 약 2시간 걸린다.

티티제(독일)=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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