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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여보, 밥 줘

입력
2018.07.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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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그리고 저녁식사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퇴근했을 때 밥상이 차려져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밥상이 차려져 있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자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겉보기에 큰 문제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희망했던 대학에 진학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자녀를 탓하고 배우자를 탓한다.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어떤 가정을 꿈 꾸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외모와 직장, 그리고 넉넉한 재산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을 올리면 그만이다.

월드컵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던 국가대표 축구팀은 일부 시민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다. 조별 예선전을 치르는 중에도 감독과 일부 선수들은 살기가 느껴지는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에게 태극마크는 자부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이웃 일본이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비난의 화살은 일본으로 향했다. 언론과 방송도 일본과의 어두웠던 역사까지 들추어내면서 폴란드와의 조별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보여 준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해 온갖 비난을 쏟아 내며 일본의 16강 진출을 흠집내기 위해 열을 올렸다.

K리그가 진행되는 시즌 동안 축구장 한 번 찾지 않는 우리다. TV로 중계되는 K리그 경기도 시청한 기억이 없는 우리다. 심지어 K리그 시즌이 언제인지도, 몇 개의 팀이 리그에 참가하는지도, 지난해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는 꼭 진출해야 하고, 월드컵에 참가하면 꼭 16강에 진출해야 한다. 우리는 늘 기적을 바란다. 국내 프로축구 리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기적을 이루었다.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기대했던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면 화를 참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의 순간은 곧 잊어버린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데는 익숙하지 않다. 실패를 되뇌이며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던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적당한 상대를 골라 맘껏 화풀이를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화풀이의 명분과 과정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지목된 공공의 적에게 화를 쏟아 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구성원 간의 동질성을 느끼고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정부도 기업도 매일같이 통계치를 쏟아 낸다. 모두가 결과 값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숫자에 얽매여 살아간다. 단기간의 결과 값에 몰입하다 보니 먼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저 단기간의 결과값을 관리하고 책임을 면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결과 값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패의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은 문책을 당하는 책임자와 함께 사장되기 일쑤다. 실패의 경험은 미래를 위한 값진 자산임에도 말이다.

결과와 함께 과정에도 관심을 가질 때,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용인되는 비윤리적인 문화를 걷어낼 수 있다. 그리고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결과 중심의 보상체계를 과정도 고려하는 보상체계로 바꾸어 가야 한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과정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잣대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낮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기다려진다. 업무에 접목된 정보기술이 업무처리 과정에서 디지털 공간에 남겨진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해서 과정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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