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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윌리엄 킬러 (3.23)

입력
2018.03.23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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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우리를 그른 길로 인도할 리 없다"며 가톨릭 성직자의 성범죄를 폭로했던 윌리엄 킬러 추기경이 2017년 3월 23일 별세했다. archlou.org
"진실이 우리를 그른 길로 인도할 리 없다"며 가톨릭 성직자의 성범죄를 폭로했던 윌리엄 킬러 추기경이 2017년 3월 23일 별세했다. archlou.org

19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대교구 신부 존 게이건(1935~2003)이 아동 상습 성폭력 혐의로 기소되면서 가톨릭 교회와 세계가 경악했다. 그는 기소되기까지 30여 년간 교구 내 절반 가량의 교회에 봉직하며 130여 명의 소년을 성추행ㆍ성폭행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초등학생이었고, 4세 소년도 있었다. 그는 2002년 10년 형을 선고 받았고, 이듬해 수감 중 한 무기수에 의해 살해됐다.

더 충격적인 건 당시 보스턴 교구 교회와 추기경(Bernard Law)이 그의 범행을 진작 알거나 짐작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2002년 1월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 지는 특집기사를 통해 교회가 조직적으로 그의 범죄 사실을 감추거나 묵인하며 매번 다른 교회로 인사이동을 단행, 사실상 성범죄를 도왔다고 폭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게이건의 성직을 박탈한 것은 기소된 지 7년 만인 98년이었다. 로 추기경은 2002년 말 사임했다. 교회 안에서는 차제에 성직자 범죄를 뿌리뽑자는 편과 개인 일탈로 사태를 정리하자는 편이 맞섰다.

그 무렵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대주교였던 추기경 윌리엄 킬러(William Keeler, 1931~2017)는 “아동 (성적)학대로 기소돼야 마땅할” 성직자 57명의 명단을 대교구 홈페이지에 공개, 가톨릭 교회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성직자들이 연루된 성 추문의 합의, 상담, 소송 등 법률 비용으로 교회 돈 560만 달러가 쓰였다는 사실까지 그 내역과 함께 폭로했다. 게이건 기소 초기 언론의 경쟁적ㆍ상업적 보도를 과장이라 여겨 “광적인 집단 먹이사냥(Feeding frenzy)”이라고 비난했던 그였다.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 신부에게 총상을 입혀 중죄인으로 기소된 한 남성을 위해 그는 재판정에 출두해 증언하기도 했다. 그의 용기는 찬사를 받았지만, 교회와 교구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비난도 샀다.

중도보수파였던 그는 동성애ㆍ낙태에 반대했고 낙태 찬성 정치인의 성찬식도 거부했다. 대신 사형제에 반대했고, 교회보다 성경, 진실의 가르침을 중시했다. 그는 “스캔들에 움츠리며 감추려 한 과거가 결과적으로 그런 범죄를 허용한 셈이 됐다. 우리는 겸허한 참회와 정당한 분노로 그 사안을 다루어야 한다. 진실이 우리를 그른 길로 인도할 리 없다”고 말했던 윌리엄 킬러 추기경이 1년 전 오늘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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