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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세월호 유족들 행진 선두… “청와대는 오는데 2년7개월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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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세월호 유족들 행진 선두… “청와대는 오는데 2년7개월이나 걸렸다”

입력
2016.12.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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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운집한 40만명 세갈래 나눠 靑 100m 앞으로

1.3km구간 Y자 형태 거대 인간띠

세월호 유족들 “이런 정권서 아이들 희생”… 퇴진 구호 대신 절규 토해내

경찰, 해산보다 안전관리 집중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박근혜 퇴진 6차 촛불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사진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박근혜 퇴진 6차 촛불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사진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도 해보고 정부와 싸워도 봤는데 2년7개월이 흘러서야 청와대 100m 앞까지 왔습니다. 청와대는 이렇게 멀리 있었습니다.”

3일 오후 4시 청와대 건물이 훤히 보이는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4반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50)씨는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버텨 온 지난 시간을 떠올리다 결국 고개를 떨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2014년 8월 진상규명 의지가 없는 정부에 항의하고 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청와대와 200m 거리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겨우 100m를 더 전진하려 28개월 동안 서러움과 울분을 참아온 것이다. 유가족 150여명이 토해낸 목소리는 “퇴진하라”는 구호가 아닌 “와아아악”하는 절규였다. 김씨는 “이런 정권 아래서 우리 아이들이 희생됐다는 걸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며 흐느꼈다.

이날 오후 성난 민심이 청와대를 포위한 7시간30분은 행진 선두에 선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로 시작됐다. 전날 법원 결정으로 6차 촛불집회에서 청와대 100m 앞 최초 행진과 200m 최초 주말 야간집회가 허용되면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자”를 외쳤다.

촛불문화제 등 본 행사는 무의미했다. 6차 집회에서는 공연보다 청와대 행진에 집중해 박 대통령을 압박하겠다던 주최 측 의도는 적중했다.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 운집한 40만명의 시민들은 청운동길과 효자동길, 삼청동길 등 세 갈래로 나눠 대이동에 나섰다. 30여분 뒤 촛불 행렬은 효자치안센터, 자하문로 16길 21, 팔판동 126맨션 등 청와대 100m 앞 지점에 다다랐다. 청와대를 서ㆍ남ㆍ동쪽에서 포위한 것이다. 참가자들이 계속 밀려든 탓에 해가 떨어지자 광화문광장부터 율곡로, 행진 도착지를 잇는 1.3㎞ 구간이 물 샐 틈 없이 채워져 ‘Y’자 형태의 거대한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대학생 김모(23)씨는 “태어나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청와대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발 디딜 공간조차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청와대 주변을 가득 메운 촛불의 동력은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떠넘긴 박 대통령에게 실망한 국민들의 상실감이었다. 집회 장소에서는 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즉석 성토대회가 열렸다. 자신을 두 아이의 엄마로 소개한 이선희(32)씨는 청운동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새누리당 의원님들은 박 대통령 담화가 나오자마자 개헌 이야기만 꺼낼 뿐 탄핵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즉각 하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조건을 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난했다.

시민들은 발언할 때마다 청와대 방향에 대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학생 박모(23)씨는 “200m 거리의 함성도 청와대에서 다 들렸다는 뉴스를 봤다”며 “더 가까이 다가간 오늘은 박 대통령이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허용된 시간까지 ‘퇴진하라’를 외치겠다”고 말했다.

분노는 거셌으나 시민들은 이날도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청와대 부근까지 진출한 일부가 차벽을 친 경찰을 향해 “경찰도 부역자”라고 외치며 험악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러자 다수 시민들은 “경찰도 국민”이라며 오히려 의경들을 보호했다. 오후 10시30분 야간집회 허용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운 사람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발언을 이어가자”며 법원 결정을 따르려는 준법의식도 엿보였다. 직장인 김영환(53)씨는 “4차 집회 때부터 나와 집회 뒷정리를 도왔다. 시민들이 많이 도와줘 힘든 줄 모르겠다”며 웃었다.

경찰도 시민들을 배려했다. 꽉 들어찬 행렬에 막혀 1차 행진 참가자들은 제한 시간이 오후 5시30분을 넘겨서도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상 불법집회이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 기본권을 보장하고 안전한 집회 관리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일부 참가자가 계속 철수를 거부하자 경찰은 강제해산 작전에 나섰으나 연행하지는 않았다. 6차 촛불 역시 입건자는 0명이었다.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12월 3일은 촛불민심이 승리한 날로 민주주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을 선언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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