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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이런 동물이 살고 있다니… 이색 동물 총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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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이런 동물이 살고 있다니… 이색 동물 총집합

입력
2015.03.1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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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파 헨더슨 지음, 이한음 옮김

은행나무출판사 발행ㆍ540쪽ㆍ2만5,000원

아홀로틀ㆍ비너스의 거들…

놀랍고 진기한 그들의 이야기

생물학에 문학ㆍ예술 보태 풍성

지구상 생명 공존의 중요성 일깨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훔바바’라는 상상의 동물이 나온다. 훔바바는 온몸이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고 사자의 발, 독수리의 발톱, 들소의 뿔에다 꼬리 끝에는 뱀의 머리가 달려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쓴 ‘상상 동물 이야기’는 훔바바를 비롯한 온갖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집이다. 보르헤스는 신화와 전설, 작가들이 상상한 동물들로 이 책을 썼지만, 현실에는 상상 속 동물들보다 더욱 기이한 동물들이 수두룩하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지구에 그런 동물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진기한 동물들을 이야기한다. 대부분 인간의 활동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나 뜨겁고 바싹 마른 사막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사는 녀석들이다. 전체 27장 중 각 장 표제동물의 3분의 2는 심해 동물이다. 지금 나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 친구들을 저자는 동물학, 문학, 신화, 역사, 고생물학, 역사적 일화와 예술까지 총동원해 매혹적으로 소개한다. 호기심으로 펼치게 되는 책이지만 생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생명들로 가득찬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깨닫고 생각하게 만든다.

첫 장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계생물처럼 신기하게 생긴 분홍빛 도롱뇽 ‘아홀로틀’이 제1장의 주인공이다. 웃는 아기처럼 보이는 귀여운 얼굴에 앙증맞은 팔다리를 지닌 이 친구는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스페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스페인 군대가 상륙한 뒤로 아홀로틀이 사는 호수의 물을 빼는 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린 아즈텍 문명처럼 지금 아홀로틀은 멸종 위기종이다.

멕시코 고원 호수에 사는 아홀로틀은 분홍빛 귀여운 도롱뇽이다.
멕시코 고원 호수에 사는 아홀로틀은 분홍빛 귀여운 도롱뇽이다.
‘비너스의 거들’이라는 별명을 지닌 띠빗해파리.
‘비너스의 거들’이라는 별명을 지닌 띠빗해파리.
심해 산호의 일종인 이리도고르기아 포우르탈레시.
심해 산호의 일종인 이리도고르기아 포우르탈레시.
극한 환경을 이겨내는 곰벌레.
극한 환경을 이겨내는 곰벌레.
심해동물인 예티게는 섭씨 200~300도의 물이 솟아나는 열수 기둥 옆에 산다.
심해동물인 예티게는 섭씨 200~300도의 물이 솟아나는 열수 기둥 옆에 산다.
호주 사막에 사는 가시도마뱀.
호주 사막에 사는 가시도마뱀.

저자는 진화생물학의 시각에서 각 동물을 소개하면서 문학과 예술을 보태 더 풍성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예컨대 ‘비너스의 거들’이라는 별명을 지닌 띠빗해파리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 작곡가 존 다울런드의 노래와 쇼팽의 피아노곡,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거론하며 띠빗해파리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오르가슴을 불러일으킬 듯한 무지갯빛 흩뿌리면서 플랑크톤 우주를 떠다니는 투명한 우주 탐사선”이라고. 띠빗해파리는 해파리처럼 생겼지만 해파리는 아니다.

이리도고르기아 포우르탈레시. 이름도 낯선 이 동물은 수심 1,600m 이상 깊은 바다 밑에 사는 산호의 일종이다. 햇빛에 비추면 무지개빛깔로 빛나는데, 전체 구조가 대칭을 이루는 형태가 몹시 아름답다. 저자는 이리도고르기아 포우르탈레시의 형태에서 DNA 나선구조와 마르셀 뒤샹의 미술 작품을 떠올린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묻는 미학적 탐험과 유전자 연구의 역사를 연결해 매끄럽게 풀어간다.

경이로운 동물의 행진인 이 책에서 특히 놀라운 존재는 심해 동물이다. 예를 들어 깊은 바다 밑 열수 분출구에는 내장이 아예 없으면서도 사람만큼 커다란 생물이 우리를 순식간에 익혀버릴 뜨거운 물 속에서 번성하고 있고, 춥고 컴컴한 드넓은 심해에서는 거의 모든 생물이 빛을 내면서 살아간다.

우주 여행을 하고 온 곰벌레 이야기도 재미있다. 곰벌레는 몸집이 이 문장의 마침표 만큼 작다. 히말라야산맥부터 심해 퇴적물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사는데, 어떤 극한 환경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능력이 있어서 2007년 우주 실험에 참여했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지구 상공의 궤도에서 열흘간 있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섭씨 마이너스 272.8도에서 섭씨 151도까지 오르내리는 온도와 거의 완전한 진공 상태에서 인간의 생명을 해칠 수준보다 1,000배 더 강한 우주선(cosmic ray)를 견뎌낸 것이다. 인류가 언젠가 지구가 아닌 별에 살게 된다면, 곰벌레 덕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을 두고 “존재의 이유를 더 잘 이해하고 상상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동물들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우리들 인간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지만 ‘우주선 지구호’에 동승한 온갖 생명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다른 생명들을 위협하고 무시하면서 ‘시시껄렁한 파괴자’ 노릇을 해왔다. 저자는 환경 보호니 생명 존중 같은 메시지를 드러내 강조하거나 윤리적 반성을 촉구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생명이 공존하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저자 캐스파 헨더슨은 과학 전문 작가다. 영국 BBC 라디오의 환경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파이낸셜 타임스’, ‘뉴 사이언티스트’ 등에서 언론인이자 편집위원으로 일해왔다. 이 책은 2012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과학서 전문 번역가 겸 저술가로 잘 알려진 이한음씨가 번역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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