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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언시 딜레마, ‘을’ 뒤통수 치고 면죄부 받은 유한킴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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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언시 딜레마, ‘을’ 뒤통수 치고 면죄부 받은 유한킴벌리

입력
2018.02.19 15:4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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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유한킴벌리가 영세 대리점(별도 사업자)을 규합해 10년 가까이 담합 체제를 이끌어 오다 어느 날 갑자기 짬짜미를 깨고 담합 사실을 스스로 신고했다. 그 결과 유한킴벌리는 거액의 과징금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면제받은 반면 본사(유한킴벌리) 방침을 충실히 따를 수 밖에 없었던 대리점은 담합 혐의로 제재를 받게 됐다. 을(乙)의 뒤통수를 친 대기업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1순위로 ‘자수’하면 무조건 처벌을 면제해 주는 현행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유한킴벌리와 23개 대리점은 2005~2014년 조달청 등 14개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한 총 41건의 위생용품(마스크 등) 입찰에서 사전에 가격 및 낙찰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13일 유한킴벌리를 검찰에 고발하고 유한킴벌리 본사에 2억1,100만원, 23개 대리점엔 3억9,4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그러나 유한킴벌리 본사는 실제로는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담합과 관련된 처벌을 전혀 받지 않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신고하는 기업에게 과징금 전액과 검찰 고발을 100% 면제해 준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담합의 특성상 내부 고발이 없으면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신고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문제는 유한킴벌리 본사와 대리점이 ‘갑을(甲乙) 관계’라는 데에 있다. 대리점은 본사의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 실제 이번 담합은 본사가 주도했고 일부 대리점은 이 같은 행위가 위법인지도 모른 채 가담했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위법 행위를 주도하고 가장 큰 이득을 챙긴 본사는 처벌을 면제 받은 데 비해 종업원수 10명 전후의 영세 대리점만 과징금 ‘폭탄’을 맞게 된 셈이다.

담합의 ‘주범’이자 최대 수혜자가 리니언시 혜택을 받은 이번 사건은 리니언시 제도의 허점을 보여준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진신고 1순위 기업에 대해) 반드시 리니언시를 적용하도록 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5조는 ‘다음의 경우 과징금 및 시정조치를 면제한다’며 무조건적 감경을 규정하고 있다. 신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담합을 주도하고 장기간 담합을 반복해 온 사업자가 있음에도 법률적 약자인 대리점에게만 제재를 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며 “갑의 위치에서 담합을 주도한 기업이 이를 자진신고 하는 경우 공정위 재량에 따라 리니언시를 적용 받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한킴벌리는 특정 사업부와 대리점 간 담합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본사 차원에서 위법 사실을 알게 돼 이를 신고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유한킴벌리는 입장문에서 “이번 사안의 대부분은 해당 사업부문이 대리점과 공동으로 영업기회를 확장하기 위한 의도로 시도됐다”며 “유한킴벌리는 해당 사업부와 대리점의 위법성 우려를 인식한 후 곧 바로 해당 행위를 금지했고 공정위에 즉시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일부 직원 및 대리점에게만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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