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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병 속의 시간

입력
2017.12.25 16: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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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서는 휴대폰 화면만 봐도 거의 오차가 없는 시간을 알 수 있지만, 과거에는 정확한 시간을 배달했다고 한다. 시계 제조업으로 유명한 스위스 등지에서는 시계업자들이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 별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학자들을 졸라 시간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나중에는 천문관측대에서 제공하는 시간 서비스를 신청해 전보 등을 통해 매일 시보(time signal)를 배달 받았다. 벽시계나 손목시계 등도 천문관측대에 맡겨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를 받고 공식 인증을 받아 판매를 했다.

▦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정하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시간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로 일종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구촌 어디를 가도 편리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지인과의 약속 시간이야 10분쯤 늦어도 그만이지만, 출근 시간이나 사업상 만남 등은 정확히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수백 분의 1초라도 틀리면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발전소는 1,000분의 1초 정도, 통신사는 100만분의 1초 단위의 정확도가 필요하다.(앨런 버딕의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 수명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이론적으로 빛의 속도보다 빨리 달릴 수 있으면 시간을 역류할 수 있다지만,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다. 아무리 가두고 싶어도 시간은 간다. 짐 크로스가 1972년에 발표해 인기를 모았던 노래 ‘Time in a bottle’이 그런 내용이다. ‘병 속에 시간을 모아 둘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첫 번째 일은, 매일매일을 모아두는 거예요, 시간이 끝나는 날까지, 당신과 그 매일매일을 함께 할 거예요.’

▦ 크리스마스가 지났으니 또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연말이면 늘 그렇듯 기억할 만한 족적도 없이 일년을 보냈다는 허망함이 밀려든다.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게 600만년 전이고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게 5,000년에 불과하다. 인간의 일생은 끽해야 100년으로 인류역사로 보면 하루살이의 삶도 안 된다. 서산대사가 입적 직전에 남겼다는 ‘해탈 시’ 구절이 가슴에 닿는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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