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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학부모 이기심과 대치동엄마 코스프레

입력
2017.11.07 15: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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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문제라니까요.” 나도 한때 동조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반성하고 사죄한다. 학부모 이기심의 구성 성분을 알게 된 다음부터다.

학부모 이기심에도 분명 차이가 있다. 주로 사교육비 지불능력이 기준이 되는데 우선 공교육을 간단히 무시하는 일부 상류층이 보인다. 그들의 이기심은 다분히 공격적으로 공교육은 파괴대상일 따름이다. 넘치는 경제력을 위력적으로 사용하려면 당연히 공교육 질서를 무시해야 한다. 조기교육으로 나이를, 선행학습으로 학년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반면 방어적인 이기심이 있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심정과 비슷하다. 상류층에 비해 사교육비를 마음껏 쓸 수 없는 경우다. 가급적 공교육이 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상류층 부모 주도의 사교육 무한경쟁에서 내심 빠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랑이 찢어지는 처지다 보니 학교만 보내도 충분히 아이가 잘 배우고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자식이 특별히 불리할 게 없다면 정말 그러고 싶다.

문제는 학부모들의 공교육 사용경험에서 비롯한다. 믿었던 공교육이 오히려 배신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 때문에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다고 학부모를 질책하는 교사를 만나는 순간이다. 남들만큼 사교육을 시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학교에서 잘 배우면 된다는 믿음이 박살 난다. 어쩔 수 없이 공교육을 버리고 사교육 대열에 합류한다. 그 순간부터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로서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고 ‘대치동엄마 코스프레’에 적극 나선다. 상류층의 ‘사교육 더 시키기 경쟁’에 휘말린 학부모들이 빠르게 늘어 이미 대세다. 중산층은 거의 넘어갔으며 여전히 공교육을 지지하는 세력은 얼마 남지 않았다(이런 적극적 공교육 지지자들은 민심을 대변하기 어렵다). 나도 이러다 학부모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공교육을 믿고 살려야 한다는 말이 주저된다. 단지 상류층 코스프레가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알리려고 애를 쓴다. 대세를 장악했지만 오히려 실패확률은 더 높아졌다는 사실, 성공사례라는 것도 가족 갈등, 인성 교란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개인기로 아이를 키우지 말고 건강한 이웃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궁색하다. 꼭 필요한 이웃인 학교가 외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부모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있으니.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하다. 부모의 자질 부족 때문도, 아이의 노력 부족 때문도 결코 아니다. 사교육 무한경쟁논리가 횡행하는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상황이 유발한 감정이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상류층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중산층을 안심시켜야 한다. 작년 말부터 시행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의 효과를 학교에서만이라도 다수 학부모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학대에 가까운 영ㆍ유아 조기 사교육을 금지하는 법률도 시급하다. 이제 정말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에게 배신감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학교에서 발본색원하겠다는 자정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나는 학부모 이기심 구성 성분의 절반 이상은 분명 공교육 책임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니 제발 이기적인 학부모라는 생각조차 삼가자. 적반하장 아닌가.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규제하는 정책으로, 일부 교사의 헌신으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은 오만이자 독선이다. 자기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학부모들은 기꺼이 그 손을 잡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치동엄마 코스프레, 어렵지만 벗어나면 정말 좋다는 말, 나의 확신이니 믿어주기를.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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