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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가 낳은,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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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가 낳은,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기

입력
2016.04.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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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폭탄 만들기

리처드 로즈 지음ㆍ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1,160쪽ㆍ5만원

핵실험의 공포를 과거사가 아닌 미래, 아니 현재의 것으로 여긴다면 이 책은 어지간히 간담마저 서늘하게 만드는 책이 될 수도 있다. 기자 출신의 저자는 1986년 ‘원자폭탄 만들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술가다. 과학자, 정치가, 군인, 피폭자 등 수백 명의 증언과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원자폭탄 개발사를 다룬 책이었다. 이어 1995년 내놓은 후속작이 ‘수소폭탄 만들기’다.

지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

수소 폭탄 개발의 뒷이야기

퓰리처상 받은 기자 출신 저자

제2차 세계대전 배경으로

사실을 극적으로 서술

이 책은 1,000여 건의 문헌과 증언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 미소가 천착한 원자폭탄, 수소폭탄 개발 경쟁사를 파헤친다. 가공할 규모의 스파이 공작과, 군인 과학자 정치인 등 개발 주역들의 공포, 광기 등이 뒤엉킨 막후를 그리면서 저자는 무기개발을 추동한 욕망의 실체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스탈린은 동맹국인 미국 등이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지만, 파죽지세 공습을 퍼붓는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도 모든 여건이 역부족이었다. 다수의 과학자들이 “소련이 가장 먼저 개발해야 한다”고 조급해했지만, 공황상태에 빠진 모스크바는 이 “확실하지 않은, 먼 미래의 무기”에 좀처럼 우선 순위를 두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런 속에서도 유독 탁월하게 가동했던 간첩망을 통해 영국, 미국의 연구 정보를 꾸준히 빼냈다. 공작원 중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 과학자도 있었다. 종전이 임박할 때까지 머뭇거렸던 스탈린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미국 연구의 진척상이 드러나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과학자들의 “태만”을 원망했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1945년 8월 마무리됐지만, 다급히 영미의 기술을 뒤쫓기 시작한 소련이 마침내 49년 원폭 실험에 성공했고, 미국이 다시 공포에 휩싸이며 냉전의 서막이 열리는 과정을 펼쳐 보인다. 소련의 실험 성공이 알려지고 미국 내 스파이의 실체가 드러나자 미국은 다시 “슈퍼 무기 개발”에 나섰고, 1952년 원폭 출력 1,000배에 해당하는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이 슈퍼무기 개발에 미국은 4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그 사이 소련은 경제위기에 몰려 붕괴했다. 미국의 ‘핵 억지력’은 1945년부터 의미 있을만한 수준으로 가동됐고, 49년부터는 소련도 비슷했는데 양국은 애국심과 공포에 사로잡혀 상대가 장래에 “할 수 있는 일”에 광적으로 대비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책에는 한반도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원폭 사용을 깊이 고려한 구체적 정황, 종전 뒤 이승만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남북을 “통일하고 싶다”며 전쟁을 제안했다가 “내가 말하는 종류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민주주의는 망할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는 일화 등도 소개됐다.

진실을 찾는 노정에서 저자가 마주한 깨달음은 “1938년 핵 에너지를 방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과 동시에 인류는 그에 대한 통제력도 잃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완벽히 통제할 방안을 아무리 강구하더라도 어떤 인간, 이를테면 김정은이 원자력을 사용할 과학지식을 알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통제 불능한 학습 능력을 갖게 될까 벌벌 떠는 인간들은 정작 인류 차원의 어떤 합의도 없이, 그것도 이미 오래 전 핵 특이점을 넘어선 셈이다.

원저에 소개된 나가사키 급 원자 폭탄 비키니 베이커(왼쪽)와 마이크 사진.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위로 폭탄의 폭발 광경을 겹쳐 합성했다. 베이커의 불덩이는 지름 730m(버섯구름의 목 부위) 정도이나, 마이크는 불덩이만 지름이 4.8km 이상이다. 마이크가 터지면 뉴욕시의 자치구 5개가 지도에서 모두 사라진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원저에 소개된 나가사키 급 원자 폭탄 비키니 베이커(왼쪽)와 마이크 사진.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위로 폭탄의 폭발 광경을 겹쳐 합성했다. 베이커의 불덩이는 지름 730m(버섯구름의 목 부위) 정도이나, 마이크는 불덩이만 지름이 4.8km 이상이다. 마이크가 터지면 뉴욕시의 자치구 5개가 지도에서 모두 사라진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책의 두께와 숱한 등장인물, 역사적 배경, 과학용어 등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진 서사 덕분에 막힘 없이 읽힌다. 사실을 토대로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이런 서술 방식을 저자는 ‘논픽션(non-fiction)’ 대신 ‘베리티(verityㆍ진실성)’라고 불렀다. 지적 포만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냉전의 성격과 유산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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