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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북핵 대응, 찬성과 반대 사이

입력
2017.09.1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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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에 균열을 낸 대표적인 사건은 이라크 파병이었다. 전통적인 지지층은 어떻게 진보정권이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냐고 반발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대북 특사의 보고로 2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었다. 2003년 1월에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폭격하려 한다는 보도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의 전투병 파병을 원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한국 정부가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북한 폭격이 대단한 지렛대였을 것이다.

그때 청와대 사정을 잘 알던 사람으로부터,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밖에서 다 들릴 정도로 고성이 오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부시 행정부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로 꼽히던 파월 장관이 정말로 청와대를 매섭게 협박했는지 나로서는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미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을 압박했으리라 짐작할 수는 있다.

북미 간의 군사적 충돌은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전체의 전쟁으로 비화한다. 부시 행정부가 끝끝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한 데에는 개전 초기 엄청난 인명피해(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백만 명 이상)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굳이 정밀한 워 게임을 돌려보지 않더라도, 2천만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군사력이 집중돼 있다면 무력충돌의 결과가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북미의 군사 갈등에 최소 수십만 명의 목숨을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설령 그 위협이 허풍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인 베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미 FTA로 미국과 경제영토를 통합한 것이 과연 경제 때문만이었을까? 이라크 파병 문제는 적어도 내게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국가적 아젠다의 대표적 사례였다.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이슈였다.

2002년의 2차 북핵 위기는 6자 회담이라는 다국적 논의의 틀을 만들었으나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거의 15년이 지난 올해 9월3일 6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은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다시 한 번 북핵 위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가 도마에 올랐다. 뿐더러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과 무력시위도 비판의 과녁이 되었다. 15년 전과 달리 지금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무기를 손에 넣은 상태라고 봐야 한다. 이제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이 곧 핵전쟁을 의미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우라늄 폭탄은 TNT 1만5천 톤 규모로, 폭발 몇 초 안에 8만 명이 넘게 사망했고 결국 도시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4만 명이 죽었다. 미국에서 추정한 북한의 6차 핵실험 파괴력은 TNT 10만 톤 이상으로, 이는 통상적인 전략핵무기급에 해당한다. 히로시마 급의 6배가 넘는다. 미국의 핵우산이든 전술핵이든 우리가 그 어떤 보복수단을 갖고 있더라도 핵전쟁에 의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다. 상식 있는 대통령이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한반도 전쟁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허나 정전협정 당사자도 아니고 군사작전권도 없는 우리로서는 기본적으로 북미 양자대결 구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이 극히 제한적이다.

지금의 긴장상황에서 북한의 핵 위협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전쟁이 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하는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의 부담은 덜하다.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에서 죽지 않는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임시배치하고 전례 없는 대북 무력시위에 나선 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견제하는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 FTA로 묶여 있는 동맹국이 적극적으로 무력시위에 나서는 상황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군사작전을 벌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물론 한반도에서 전쟁이 쉽게 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 사건들이 통제를 벗어나 사태를 악화시킬 개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원칙을 고수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인사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재인 정부가 그 정도의 식견과 능력은 있다고 믿는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믿고 지지한다. 사드 임시배치를 찬성할 수는 없으나, 나는 이해한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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