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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개의 안락사 논쟁은 일종의 보복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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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개의 안락사 논쟁은 일종의 보복심리

입력
2017.12.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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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 가족이 키우는 개에 물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이슈가 되면서 ‘사람을 물어 죽인 개는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명 연예인 가족이 키우는 개에 물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이슈가 되면서 ‘사람을 물어 죽인 개는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0월 한 유명 연예인 가족이 키우는 개에 물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이슈가 되면서 위험한 개를 비롯 맹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주인을 탓하거나 맹견은 외출시킬 때 입마개를 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중 사람을 물어 죽인 개는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되었다. 당시 어떤 일간지의 기자로부터 이 안락사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 다음과 같이 기사가 나왔다. (▲기사 바로가기)

요지는 “지금의 안락사 논쟁은 사형제에 찬성하는 심리와 같다. 일종의 보복심리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기에 마녀사냥식으로 ‘사람을 죽인 개는 죽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나는 그동안 기고를 하거나 취재에 응해왔지만 이 기사에 달린 악플이 가장 많았다. (하긴 여기 동그람이 기사에도 악플이 달리기는 하는 것 같다.) 위 내용은 내가 한 말이 대체로 정확히 전달되었다. 그래도 충분하지는 않으므로 여기서 더 이야기를 해 보겠다.

처벌은 더 이상 응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처벌은 더 이상 "네가 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응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언스플래시
현대 문명사회에서 처벌은 더 이상 "네가 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응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언스플래시

우리는 흉악범을 보면 “저런 놈은 죽여야 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인간이기를 저버린 짓을 저지른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기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모두 옹호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죽여버리고 싶은 만큼 미운 사람이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마음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그 한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 우리는 평생을 후회하고 만다. 화가 나면 옆에 있는 개라도 발길질해 화풀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개를 차는 것은 사람을 때리는 것 못지않게 비난을 받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순간적인 감정과 숙고된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현대 문명사회에서 처벌은 더 이상 “네가 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는 식의 응보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도둑질을 했다고 해서 손목을 자르고 남의 눈을 다치게 했다고 해서 똑같이 손목을 자르거나 눈을 다치게 하는 나라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죽인 사람은 똑같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은 “네가 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라는 보복 심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곤장이나 돌팔매를 형벌로 삼는 나라도 똑같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매를 맞거나 돌팔매질을 당하지 않을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가?

예방ㆍ교화로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사고를 일으킨 개를 죽인다고 해서 예방과 교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픽사베이
사고를 일으킨 개를 죽인다고 해서 예방과 교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픽사베이

현대 사회에서 형벌은 응보가 아니라 예방과 교화가 주된 기능이다. 형벌을 내림으로써 비슷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범죄자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방과 교화 기능이 없는 형벌은 그 역할을 의심받는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또 다른 거부자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벌에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그리고 정신 이상자의 경우도 예방과 교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처벌 대신에 치료를 한다.사람을 물어 죽인 개에 대한 공분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책도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너도 사람을 죽인 만큼 죽어 봐라”는 식의 생각은 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그 개를 죽인다고 해서 어떤 예방과 교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개 주인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것만으로 또 다른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해서 견주의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개가 죽는다고 해서 교화가 될 리는 없지 않은가?

최훈 강원대 교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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