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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보기] 성폭력 피해 줄었다? 여가부의 불편한 통계

입력
2017.03.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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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집계 아닌 표본설문 조사

광고ㆍ스팸메시지 제외하는 등

설문 설계도 의아한 부분 많아

사법ㆍ상담기관 통계는 되레 늘어

피해자 지원 담당하는 부처가

홍보에 치우쳐 아쉬움 남아

지난 달 27일 여성가족부는 ‘신체적 성폭력 피해율 3년 전보다 절반으로 감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여가부가 2007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2016년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로 최근 1년 사이 성추행ㆍ강간(미수) 등 신체적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여성은 1.5%로 2013년(2.7%)보다 절반 가량 줄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남성 역시 0.3%에서 0.1%로 줄었습니다. 전국 19~64세 남녀 7,2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12월 방문 면접조사를 한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신체적 성폭력 피해율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을까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여러 통계들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서 집계한 성폭력 범죄는 2013년 2만6,919건, 2014년 2만5,223건, 2015년 2만7,199건으로 오히려 소폭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 피해 상담건수도 2015년 1,308건에서 지난해에는 1,353건으로 늘어났습니다. 여성긴급전화1366 서울센터에 집계된 성폭력 상담건수 역시 2013년 1,544건, 2014년 1,799건, 2015년 1,827건, 2016년 2,178건 등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황정임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설문은 1년 간의 피해 경험률이고 사법ㆍ상담기관에 신고하는 사건은 ‘1년 내 경험’에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며 “2008년부터 아동ㆍ여성 보호대책을 수립하면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지가 높아져 가해행동이 줄면서 피해경험도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표본 추출된 응답자들의 답변을 토대로 “성범죄 피해가 줄었다”고 알리기에는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는 특성상 어떤 사회계층에게 어떤 종류의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응답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가부는 모든 유형의 성폭력 피해가 감소 추세라고 강조했으나, 설문 설계 자체가 의아한 항목도 보입니다. ‘1년간 PC, 핸드폰 등을 이용한 음란 메시지에 의한 성폭력’ 피해율은 2013년 27.8%에서 지난해 조사에서는 5.5%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줄었는데요. 2013년에는 광고나 스팸(전화ㆍ문자ㆍ메일)까지 포함했으나, 2016년에는 이를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문화 확산 시대에 역행하는 설문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성폭력에 대한 신고가 늘어나면 발생률이 올라가는 게 상식적”이라며 “정기적 설문조사 항목에도 시대 변화를 담아내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통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정책 마련의 첫 걸음입니다.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여가부라면, 피해율이 줄었다는 홍보보다 피해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왜 성범죄의 표적이 됐는지를 첫머리에 알리고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조사에서도 평생 동안 1번 이상 신체적 접촉을 포함한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여성은 21.3%(2013년 19.5%)에 이릅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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